[정윤 작가]
https://youtu.be/JqBU5BvBle8?si=hQnfeN8QjQmuvD-2
“산모님! 정신 차리세요!”
“산모님, 지금 힘 빼면 안 돼요! 힘주세요!”
난산이었다.
장장 10시간에 걸친, 출근했다 퇴근하는 것만큼 길고 험한.
난생처음 겪어보는 고통과 눈물로 얼룩진, ‘사투’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눈앞이 핑핑 돌고, 머리가 새하얗고, 숨 쉬는 법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힘들면 아무 말도 안 나온다던데, 지금 딱 그 상태였다.
차라리 아까 ‘김한영 개**’라고 욕할 수 있을 때가 좋았지.
병실로 가기만 해 봐라.
이 고통을 겪게 한 망할 남편 놈의
머리털을 죄다 뽑아 놓으리라.
“산모님, 정신 놓으면 안 돼요! 정신 차리세요!”
위, 아래에서 들리는 정신 차리라는 소리가 꼭 공연장에서 왕왕 울려대는 음질 나쁜 스피커 같았다.
양쪽에서 울려대는 통에 머리가 아플 정도다.
아니, 아픈 게 과연 머리만이던가?
아, 왜 신은 여자만 이런 고통을 겪게 하신 걸까.
진짜 이런 건 체력 좋은 남자가 해야 되는 건데.
자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어른들은
이런 걸 어떻게 이겨낸 걸까?
낳을 때마다 이렇게 아프다는 건 왜 아무도 말 안 해줬지?
정신 차리라는 소리에 아무 생각이나 휘갈기고 있긴 한데.
우습게도 정신은 점점 아득해졌다.
애 낳다 죽는 사람도 많다는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닐까?
그래도 어찌저찌 열 달이나 품었는데,
애기 얼굴 한 번도 못 보고 이대로 가버리나?
내가 가면 어리바리한 남편이 애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머리, 머리 나왔어요! 산모님, 조금만 더 힘내요!”
점점 흐려지는 시야에 숨소리마저 사그라드는 것 같던 그때.
절박하게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까지 온몸이 기절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 같더니만.
이제는 온 우주가 당장 몸에 힘을 주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라는 그 소리에 없던 힘도 쥐어짜 힘을 주었고, 마침내.
“응애애!”
아, 해냈다.
그 아릿한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응애애!"
분만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소리였다.
꼭 제가 태어났다고 광고하는 것 같은.
“오후 5시 40분, 2.8kg입니다.”
고생하셨다, 축하드린다,
하는 소리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분명 방금까지 정신을 잃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눈이 감기지 않았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 작고 아릿한 울음소리만이
귓가를 가득 채웠다.
고개를 돌리자 간호사의 품에 안긴 아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겨우 한 뼘이나 될까.
얼굴도, 손도, 발도, 작고 작기만 해서
이게 정말 세상에 나온 건가, 싶은.
“보세요, 산모님.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정상이에요.”
언제 울었냐는 듯 조용해진 것이
퍼런 천에 쌓여 눈을 감고 꼬물거렸다.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한 것이 귓가를 간질인다.
이게 내 소리인지, 아이 소리인지도 모르게 그저 그 순간이 황홀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안녕, 아가야.”
작게 인사를 건넨다.
알아듣는 것 같지도, 그렇다고 들리는 것 같지도 않지만.
그렇게 건넨 인사에 화답하듯 손가락을 감싸 쥔 조막만 한 손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첫 만남.
아. 사람들이 이래서 아이를 낳는구나.
그저 이 순간이 지나치게 감격스럽고 뭉클해서.
이 한순간을 무엇으로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서.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다시 인사를 건넨다.
여전히 알아듣는 것 같지도,
심지어는 들을 수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나를 선택해 여기까지 와준
네가 대견하고 고마워서.
길고 긴 시간 저 좁고 답답한 뱃속에서 꾸역꾸역
버텨내 준 네가 사랑스러워서.
까무러칠 것 같던 그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 신기해서.
동시에, 아주 깊은 곳에서 샘솟는
이상한 책임감이 어색해서.
이 작은 손을 잡고, 부모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직장은 직장대로, 글쓰기는 글쓰기대로. 욕심은 많고 체력은 없어 매일이 도전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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