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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영그래픽] 작가님의 의견을 반영해 올려봅니다.
연애시절 남편은 내게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연인이 되어 단둘이 떠나는 첫 여행이라 설레었는데
마침 커플티까지 준비해 놨다는 그의 말에 설렘은
두 배였다.
남편이 준비한 커플티.
커플티를 태어나 처음 입어보는 나에겐
그게 그렇게 아기자기하고… 귀엽기도 하며
좋았지만 입고 나가기엔 부끄러움부터 앞섰다.
이걸 준비했다고?
우리 이거 입고 여행 가야 해?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어린이집 스타일 커플티였다.
하지만 뭐 어떤가.
누가 나를 위해 옷을 맞춰 준비해 준 적이 있었던가.
오롯이 나만 생각해 준비했을 그 마음이
그냥 너무 고마웠다.
그 커플티를 입고 우리는 가평으로,
첫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남편은 나에게 로맨틱한 추억을 남겨 주고 싶었는지,
드디어 자랑하던 기타까지 들고 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벌써 불길하죠? …네 맞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남편이 노래방에서 워커를 신고 투명기타를 허세 가득
실어 허공에 치던 걸 내가 얼마나 놀렸는지 모른다.
그게 마음에 남았는지
이번엔 제대로 기타 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온 듯했다.
나는 속으로 조금 설렜다.
저 남자가 나를 위해 준비한 로맨틱 인가?
어떤 연주를 준비했을까?
일단 여행부터 즐기자며 남이섬으로 갔다.
말로만 듣던 남이섬,
나는 처음이었고 비까지 내려서 더 로맨틱했다.
비를 피해 커플 자전거를 타고
우비까지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남편은 그런 나를 핸드폰으로 동영상까지 찍어줬다.
참 다정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원숭이가 그려진 노란 커플티만 빼면...
정말 샛노란 병아리 같이 앙증맞고 귀엽기까지 한 커플티.
그때는 둘이 같이 입고 다니는 게 부끄러워 사실 동영상이고 남이섬 여행이고 즐기는 거 조차 여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빗속 데이트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남편이 준비해 온 바비큐를 굽기 시작했다.
아, 정말 누가 해주는 밥은 뭐든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직접 날 위해 준비한 음식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고기가 고무줄처럼 질겨도 꿀맛이다.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분위기 좋은 첫 여행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물었다.
“오빠, 기타는 언제 쳐줄 거야? 단둘이 여행 오면서
기타 들고 오는 사람 처음 봐.
얼마나 잘 치는지 너무 궁금해.”
“좋지!” 하고 남편이 말했다.
이어서,
“근데… 오빠가 너무 오랜만이라 손을 좀 풀어야 돼.”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오랜만이면 간단하게 손 좀 풀면 되겠지.
근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땅~ 땅~ … 땅땅땅…?
처음엔 줄 맞추는 줄 알았다.
근데 5분… 10분… 15분이 지나도
여전히 땅땅, 딩가딩가, 평평 평, 땅땅땅…
어라?
나는 기다리다 결국 말했다.
“오빠… 뭐 하는 거야? 기타 못 치는 거 아니지?
손을 푸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러자 남편이
“거의 다 됐어! 이제 될 것 같아!”
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가방을 뒤적뒤적하더니
빛바래고 오래된 낡은 책자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기타 악보 책.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70~80년대 감성 가득한 그 책…
나는 술잔을 들고 멍해졌다.
이 사람… 지금…
내 앞에서 기타를 배우고 있는 건가…?
“오빠…
설마 지금 연습하는 거야?
나를 위해서 기타 들고 온 거 아니었어…?”
남편은 당황한 듯
“아씨… 이게 아닌데… 손이 말을 안 들어…
잠깐만, 진짜 곧 된다니까?”
하면서 계속 기타를 튕기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그는 그날 밤,
내가 기다림에 지쳐 마저 다 마신 소주에 취해
쓰러질 때까지 기타와 씨름만 했다.
나는 멍하니 소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아… 차라리 그날 노래방에서 워커신고 와서
투명기타 치던 허세 가득했던 모습이 백배 멋있다…
남편의 성격은 집요한 부분이 있다.
치밀하고 계획적인데 이상한 데서 끈기가 있다.
안 되는 기타는 포기하고
나랑 빗소리 들으며 소주 한잔하고 이야기나 하고 보내지,
왜 굳이 여행 와서 나 혼자 두고 기타랑 싸움을 벌이냐고…
이렇게 우리 둘만의 첫 여행은 우스꽝스럽고 귀엽고
어이없이 웃겼지만 따뜻한 남편의 배려가 담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우리 둘만의 여행이었다.
#남편은 현재 풀릴 대로 풀린 손으로 기타를 치며 취미생활을 즐깁니다. 가끔 조용한 시간도 필요한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