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애 있는 돌싱이라 내겐 결혼상대로도 딱이었어
우리는 이제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솔직히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가난한 재혼가정의 맏딸로 살다가 새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세상에 남은 가족은 엄마와 나 단둘뿐이었다. 결혼식에 초대할 친척도 친구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늘 결혼을 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하지?
결혼식날 하객 아르바이트를 불러야 하나 생각도 진지하게 하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어릴 때부터 다낭성 난소 증후군 때문에 임신이 어렵다고 했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기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이 항상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 이 남자라면 나의 부족한 이 조건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재혼이라 또 식을 올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혹여라도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해도 자신을 닮은 예쁜 아들이 있었기에 내가 덜 미안할 수 있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내가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나도 남편도 서로를 좋아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다 보니 여러 가지 상황을 짚어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는 양가 부모님을 뵙고 정식으로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이어갔다.
우선은 남편의 아들과 친해지는 시간도 필요했다.
덜컥 만나 엄마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2011년 2월 어느 날.
우리는 처음 만났다.
예쁜 도시락을 준비해서 날이 추우니 실내에서 놀 수 있는 롯데월드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처음 만난 아들의 모습은 귀여운 얼굴에 눈이 동그랗고목소리가 약간 쉬어있었다.
남편은 아들이 말을 크게 해서 항상 목이 쉬어있다고 했다.
낯선 나를 아빠친구라고 소개해 줬고 자세히 관찰하듯 열심히 요리조리 바라보고 있었다.
놀이동산에 도착한 우리는 아이랑 이것저것 타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싸 온 도시락을 펼쳐서 식사를 했다.
이모가 만들어온 김밥이 맛있다며 야무지게 먹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아들은 갑자기 나를 엄지 척하며 이쁜 이모라고 불렀다.
귀여운 녀석. 나도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라 아이에게 마음이 쓰였다.
왠지 나 좀 예뻐해 주세요 하는 말처럼 들려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첫 만남을 시작으로 평일에는 남편과 둘이 종종 데이트를 했고 주말에는 꼭 아들과 함께 셋이 만났다.
우리는 주말마다 셋이 만나서 가족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쯤 시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이쁜 이모랑 헤어지기 싫어요 우리 같이 살면 안 돼요?"
마음이 찡했다.
"그래도 될까? 이모가 영준이 엄마해도 될까?"
"네!! 이쁜 이모가 우리 엄마 하면 좋겠어요! 그치 아빠?"
우리는 셋이 끌어안고 가족이 되기로 약속했다.
1년여 시간 동안 아이와 시간도 충분히 갖었다고 생각한 우리는 결혼을 준비했다.
결혼식은 생략하고 그래도 나는 초혼인데 웨딩촬영은 하고 싶었다.
서울에 스튜디오 몇 군데를 알아보고 그중 맘에 드는 곳에서 설레는 맘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시어머님의 배려로 둘만의 신혼생활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하셔서 내가 혼자 살던 원룸에서 한 달간 단둘이 신혼을 즐겼다.
원룸이었지만 남편과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거 같다.
이때까진 모든 게 좋았다.
모든 게 완벽했고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 됐다.
꿈에 그리던 평범한 남자와 (애 딸린 이혼남은 내가 살아온 삶에 비하면 평범 그 자체였다) 나의 과거를 모두 수용해 주고 품어주고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 그리고 귀여운 아들까지 정말 꿈을 꾸는 듯 행복한 나날들을 기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