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신혼여행에 분단위 시간표 짜온 남자 송찬호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갔다.
나는 여행을 많이 안 다녀 봤기에 제주도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가는 상상은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기대하던 웨딩촬영을 무사히 마친 뒤 우리의 다음 계획은 신혼여행이었다.
무려 제주도로 말이다!
음, 근데 남편이 꼼꼼히 비교하고 계획적인 사람인건 눈치채고 있었는데 웨딩촬영 스튜디오 고를 때부터 심상치 않다는 걸 점점 느끼고 있었다.
나는 서너 군데 둘러보고 상담받고 적당히 맘에 드는 곳에서 하고 싶었는데 남편은 그게 아니었다.
10군데 정도 되는 스튜디오 목록을 뽑아와서 각각의 장단점 비용 등 무슨 보고서를 뽑아오듯이 뽑아왔다.
그리고 그곳 모두 상담을 다녀왔다. 하루에 다 못 가서 상담하는데 3일은 걸린 듯하다.
상담만 받는데 나는 이미 지쳤다.
나는 3군데 이상 가니깐 이제 어디가 어딘지 뭐가 뭔지 도통 헷갈리기 시작했고 그냥 대충 아무 데나 하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참 여러 가지 꼼꼼하게 따져본 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했고, 상의 후 결정하겠다고 돌아왔다. 아니 더 고민하고 상의할 시간이 필요한 거야? 우리 3일 내내 고민하고 상의했잖아. 하...
나는 답답했다. 그냥 거기서 거기 같은데 조금 더 괜찮아 보이는데서 결정하지 뭘 그리 꼼꼼하게 하나 싶었다.
그래도 우리의 평생 남을 기념사진이니 그러려니 했다.
덜렁대는 내 성격보다는 꼼꼼한 남편 성격이 더 낫지 싶었다.
그런데 신혼여행 준비할 때도 남편의 극극극 꼼꼼 계획적인 피곤한 성격을 발견했다.
남편은 신혼여행 계획서라고 A4용지 두어 장을 뽑아왔는데 거기엔 아주 작은 글씨로 빼곡히 날짜와 시간별로 식사 장소 시간까지 일정표가 적혀 있었다.
여행을 이렇게 다닌다고?
내가 여행을 많이 다녀 본건 아니지만 원래 이런 거야? 다들 이렇게 여행 다녀?
몇 시, 몇 분에 어디 식당, 식사시간 몇 분, 이동시간 몇 분, 관광시간 몇 분, 이런 식으로 빼곡히 4박 5일의 일정이 적혀 있었다.
와~
나는 늘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이다.
지금도 여행 가자! 하면 그래!
떠나는 날 아침에 짐을 챙기기도 하고 목적지와 숙소만 정해놓고 일정은 여행 당일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데로 다니는 편이다.
그런데 꽉 짜온 남편의 계획표를 본 순간 눈이 어질어질 머리가 빙빙 돌아갔다.
그래 뭐 내가 하는 게 아니니깐 나는 따라다니면 되지 하고 편하게 마음먹어보려 생각했다.
아니 근데 변수도 생길 수 있는데 식당 예약부터 모든 걸 다 준비해 온 남편이 정말 신기했다.
남편은 이런 성격 덕분에 지금도 자신이 계획한 일에서 뭐 하나 틀어지면 괭장히 짜증을 낸다.
처음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할 때는 왜 저러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데 왜 저렇게 화를 낼까? 이해가 안 갔다.
신혼 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화를 내서 정말 당황했었다.
그런 남편이 볼 때에 나는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했을까?
어느 날 둘이 쇼핑을 간 적이 있다.
나는 평소에 쇼핑을 혼자 간다.
친구들과 같이 가면 여자들은 여러 상점을 다 둘러보고 비교하고 입어보고 하는 일이 나는 너무 지치고 힘들다.
그래서 혼자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쓱 갔다가 한두 군데 가보고 필요한걸 사서 집에 온다.
아니 그런데 우리 남편이랑 쇼핑을 갔는데 남편은 내 친구들처럼 모든 상점을 둘러보는 것이다.
남자들은 안 그런다고 들었는데.....
이 남자 왜 이렇게 꼼꼼한 거야 신발 하나 사는데 무슨 모든 상점을 다 들려서 신어 보고 비교해 보고 따져보는 거야.
그냥 맘에 드는 거 있으면 사면 안 되는 거야?
다른걸 또 찾아봐야 하는 거야?
이렇게 남편과 나는 연애할 땐 몰랐던 성격들이 드러나면서 부딪히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몰랐던 게 아니라 그때도 알았는데 콩깍지 때문에 다 장점으로 보였겠지.
'와 이 남자 다른 남자랑 다르게 꼼꼼하고 계획적인 게 참 내가 없는 걸 갖고 있네? 매력 있다.'
라고 감탄했었겠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그랬겠지.
그런데 이제 막상 같이 살다 보니 그 매력이 피곤함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무튼 우리는 남편 덕분에 대단히 계획적인 신혼여행을 갔고 나는 남편이 짜온 데로 따르면 됐기 때문에 딱히 불편한 건 없었다. 단지 조금 아쉬운 건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가끔은 서둘러야 했다는 거? 그 정도였지...
그 외엔 미리 조사해 온 맛집이나 관광지 모두 만족이었다.
칭찬에 약한 우리 남편.
폭풍 띄워주기 시전은 내 몫이다.
"오빠 덕분에 정말 편하게 여행을 잘한 거 같아. 어떻게 이렇게 미리미리 다 알아보고 계획을 잘 짜올 수가 있어? 당신은 정말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잘해. 나는 참 결혼 잘한 거 같아. 그 나이트 웨이터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하러 가야 하는 거 아냐 우리?"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