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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뭐죠? 즉흥적인 여자 이은정

by 은나무

##13.계획이 뭐죠? 즉흥적인 여자 이은정



남편과 반대로 나는 매우 즉흥적인 여자였다.

뭐든 생각나는 데로 행동했고 일을 저질렀다.

결혼을 하고 젤 먼저 남편을 경악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든 사건은 미용실을 오픈했던 사건이다.


철저히 계획적인 남편 앞에서 나는 막무가내 노계획으로 남편에게 미용실을 오픈하자고 했다.

남편은 이것저것 따져가며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알아본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차려만 줘 봐 잘할 수 있어~~!!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남편에게 고통을 주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뭐든 자신감이 넘쳤다. 심지어 고집은 왜 이리 똥고집인지 밀어붙이는데 장사 없었다.


남편이 지금도 늘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영업으로 다져진 말발이 20년인데 다른 사람은 대화로다 설득이 가능한데 나는 안된다고.

이 세상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한 사람 이은정.


내가 처음에 남편을 꼬실 때 남편이 내게 깜박 속은 사건. 나만은 자기가 컨트롤하기 쉬울 줄 알았던 그 이은정이 알고 보니 세상 젤 어려운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탈탈 털리고 털리고 먼지하나 남지 않았다는 걸 안 뒤였다.


남편은 나의 진절머리 나는 고집에 마지못해서 미용실을 차려주었다. 나는 내 실력만 믿고 첫 미용실 오픈을 했고 남편은 자신의 성격답게 나름의 준비를 했다.


영업직에 맞게 여러 가지 미용실 홍보 방법도 찾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홍보했고 주말에도 열심히 미용실 홍보를 도왔다. 심지어 주말시간에 바쁠 땐 어느새 뒷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1년을 잘 운영하던 미용실에 나는 실증을 느꼈다.

아니, 그쯤 나도 사랑하는 내 남자와 나 사이에 아이를 낳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우리 사이에 선물 같은 큰 아들이 있었지만 나도 나를 닮은 내 아이가 갖고 싶어졌다.


이 생각 없고 계획 없는 즉흥적인 여자는 또 남편에게 갑자기 제안을 한다.


" 나 아무래도 미용실 접고 당신이랑 난임병원을 다녀야겠어. 우리 닮은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어."


"뭐라고? 그렇게 갑자기 미용실 차리자고 난리 칠 땐 언제고 이제 겨우 자리 잡아가는데 미용실을 정리하자고 하면 어떻게. 그리고 갑자기 아이를 갖자고? 이건 우리 계획에 없던 거잖아?"


"나 안사랑해? 나를 사랑하면 나 닮은 아이도 갖고 싶은 거 아냐?"


나는 말도 안 되는 어린아이 같은 이유로 남편을 몰아갔다. 나는 순간 생각나는 데로 행동하는 성격대로 또 남편을 볶아갔다.


그때 남편은 내가 이런 여잔 줄 알았으면 결혼을 열 번이고 더 심각하게 생각했을 거라고 했다.

나는 당신이 이런 남자라서 고민 없이 결혼을 했다고 말해줬다.


남편은 너무나도 계획형 남자고 나는 매우 즉흥적인 막무가내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를 다 따라줬던 거 같다.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계획 없이 당장에 미용실을 차리자고 했을 때도 나를 따라줬고 갑자기 잘하고 있던 미용실을 정리하고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했을 때도 동의했다.


우리는 결정하자마자 미용실을 정리했고 난임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치고 아마도 임신이 어려울 듯하다 했다. 임신을 해도 임신 유지와 출산이 어려울 거라고 했다. 나에게 자궁 선근증이라는 질환이 있는데 자궁 내막이 점점 두꺼워지는 질환이었다.


아기가 자랄 공간이 부족하고 나와 비슷한 경우의 산모는 임신 7개월 차에 자궁 파열이 되는 위험했던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런 말에 무서울 리 없는 나는 도전했다.

의사 선생님은 딱 3번 인공수정을 시도해 보고 안되면 포기하자 했다.


다행히 우리에게 2번째 시도에 아이가 생겼고 무사히 40주를 채워서 우리의 새 가족이 되었다.


이때 나는 우리 남편의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다정함과 자상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임신 중 나는 치킨이 먹고 싶었다.


큰아이는 할머니 댁에 가있었고 남편이랑 나랑 단둘이 있었는데 남편이 양손에 치킨을 들고 본인 접시에 새로운 치킨을 막 옮겨 담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재밌어서


"오빠 뭐 해?"


"네가 맨날 맛있는 건 다 먼저 골라 먹어서 내가 미리 빼놓는 거야"


"응? 내가 언제? 뭐가 맛있는 건데? 난 그런 거 뭔지도 몰라 아무거나 먹었어"


"네가 맨날 그것만 골라 먹어서 나는 맨날 맛없는 것만 먹었어."


뭐야 이 남자.

보통 임신한 아내한테 더 챙겨주지 않나요?

아니 임신하지 않았어도 보통 사랑하는 사람을 서로 먼저 챙겨주지 않나요?

나는 그랬던 거 같은데.... 뭐지? 이 남자...


이 이야기를 내가 아는 친구나 주변 사람들한테 하고 나면 나한테 모두들 하나같이 거짓말한다고 해서 얼마나 억울하던지....


그런데 내 맘을 정확히 알아주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남편의 형, 누나였다.

가족들이 모인 명절에 나는 이 섭섭함을 말했는데, 다들 설마 찬호가 그랬다고? 하는데 형님과 누나는 동시에 말했다.


"이 자식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은정아 네가 이해해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 철없는 놈아 아직도 그러냐?

네 아내 좀 챙겨줘라."


속이 펑 뚫렸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직도 한다. 이날 내가 얼마나 충격과 서운함을 느꼈는지 아직도 곱씹을 만큼이나 서운했다. 남편은 이제 제발 그만 얘기하라고 하는데 나는 절대로 잊히지 않을 사건이다.


또 남편은 뭐든지 한번 하기 시작하면 끊기가 있는 사람이다. 아주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본다.

그 당시 우리는 핸드폰으로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내가 둘째를 낳으러 병원에 입원한 날 진통을 12시간을 하다가 결국엔 수술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남편은 그날 내가 진통하는 그 시간 옆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놈에 정도 없고 정신없는 남편을 봤나.


아내가 아파 죽겠다고 울고 불고 있는데 그 옆에서 나를 두고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게임을 하는 남자 본 적 있나요?


이 남자를 죽여 살려하는 동안 나와 아기는 위험해졌고급하게 수술실로 이동해서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 사건 역시 평생 우려먹을 만큼 서운했던 사건이 되었다.


아무튼 초초초 즉흥적이면서 계획 없는 아내를 둔 매우 계획적이고 치밀하지만 초초초 개인주의 인정머리 없는 남편과 나는 연애때와는 다르게 서로를 새롭게 알아가며 첫눈이 오는 2014년 12월 1일.


새로운 식구를 맞이했다.

안녕 별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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