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우리의 첫 커플여행
어린이집 단체복 같은 샛노란 커플티를 입고 우리는 가평 어느 펜션으로 첫 여행을 떠났다.
우스꽝스러운 커플티면 어떠랴 누가 나를 위해 준비한 정성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오롯이 나를 생각하며 준비했을 그 마음이 나를 설레게하기에 충분했다!
남편은 나와의 첫 여행에서 나를 위해 로맨틱한 추억을남겨주려 했는지 드디어 기타까지 준비해 왔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남편이 노래방에서 워커에 투명기타로 나를 놀라게 했던 우스꽝스러웠던 일을 참 많이도 놀렸는데 그게 마음에 계속 남아있었나 보다.
드디어 자신의 기타 치는 모습을 보여주려 단단히 각오를 한 듯 커플여행에 기타를 들고 오다니….
남편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나를 위해 기타까지 정성껏 준비해 온 남편이 참 로맨틱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연주를 준비했을까내심 기대도 됐다.
아무튼 기타 연주는 저녁에 듣기로 하고 우리는 우선 가평여행을 즐겼다.
우린 가까운 남이섬으로 갔다.
나는 이때까지 여행을 많이 다녀본 적이 없어서 남이섬도 남편과 처음 갔다. 말로만 듣던 남이섬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순간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를 조금이라도 피해보고자 지붕이 달린 커플자전거를 대여해서 둘러보기로 했다.
우비를 사 입고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고 데이트하는 운치도 지금 기억해 보니 참 설렘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주었다.
참 다정한 사람이다.
데이트가 이런 거구나~ 여행이 이렇게 즐거운 거구나~
샛노란 커플티만 빼면 참 대만족스러운 남이섬 데이트였다. 지금도 그날의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면 그땐 부끄럽기만 했던 커플티도 그렇게 앙증맞을 수 없는 새싹 같고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그렇게 운치 있는 빗속 남이섬 데이트를 마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남편은 준비해 온 바비큐로 저녁을 준비 중이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참 자상하다 생각했다.
사랑받는 기분이 이런 건가?
하면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이 시간을 행복하게 즐기고 있었다.
주부들은 알 것이다.
누가 해준 밥은 뭐가 됐든 다 맛있다.
특히 나는 어릴 때부터 늘 스스로 챙겨 먹고살아야 했기에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음식은 정말 꿀맛이었다.
심지어 좋아하는 남자가 분위기 좋은 여행지에서 맛있게 구워준 바비큐는 말해 무엇하랴~
고무줄 같이 질긴 고기라도 꿀꺽꿀꺽 잘도 넘어갈 기세였다. 드디어 식탁이 다 차려지고 나를 불러 앉힌다.
우와~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오고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고기와 소시지 야채들과 어우러진 소주. 군침이 넘어간다.
남편과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저녁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오빠 기타는 언제 쳐줄 거야? 무슨 수련회 오는 것도 아니고 단둘이 여행 오는데 기타 들고 오는 건 처음 봐 들어본 적도 없어 진짜 기타 잘 치나 봐~ 궁금해 이제 배도 부른데 기타 좀 쳐줄 수 있어?”
“좋지~ 그런데 오빠가 한동안 기타를 안쳐봐서 오랜만이라 잠깐 손 좀 풀어야 해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뭐 당연히 그럴 수 있지 한동안 안쳤으면 손 풀시간은 줘야지 생각하고 홀짝홀짝 빗소리를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띵~띵~ 띵띵 띵 띵~띵~
‘아아 기타 줄 맞추는 건가 보다 ‘
그런데 이상하다. 자꾸만 띵띵 기타 줄 튕기는 소리만 들린다. 음 뭔가 있겠지 나는 잘 모르니까 기다려 보자.
시간이 흐르고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해 물었다.
“오빠 뭐 해? 기타 못 치는 거 아니지? 무슨 손을 푸는데 이렇게 오래 걸려~ 오늘 안에 들을 수 있는 거 맞아?”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남편은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해서 그렇다며 거의 다 됐다고 이제 들려준다고 했다.
그러더니 주섬주섬 다시 가방을 뒤적거린다.
오래된 빛바랜 낡은 책자 하나를 꺼내든다.
머야 머 하는 거야 기타는 언제 쳐주는 건데.
기다리다 숨 넘어갈 지경이다. 나는 소주만 연신 들이키며 답답해 미친다.
남편은 낡은 책장을 뒤적거리기 시작하더니 기타를 튕기기 시작한다.
와!!!
나 지금 내 귀 내 눈 정상 맞지???
나 지금 연신 마신 술 때문에 눈과 귀가 이상해진 거 아니지?
남편이 주섬주섬 꺼내든 책은 기타 악보 책인데 본인이어릴 적 기타를 배울 때 보던 책이었다.
그것도 70.80 시대 음악 악보.
게다가 남편은 그것조차 딩가딩가 팅팅 거리고 있다.
“오빠! 연습을 하고 왔어야지 나를 앞에 두고 연습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해! 나를 위해서 기타 들고 온 거 아니었어? ”
“아씨 이게 아닌데, 왜 이러지,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 거 같아, 술 취했나? 손이 말을 안 듣네. 잠깐만 기다려봐 곧 잘 칠 수 있어”
와 이 남자 설마 이것도 계산된 매력 발산 타임 아니겠지? 어리바리한 매력어필하는 건가?
차라리 그때 처음 만난 날 노래방이 났다.
허세 쩌는 자세로 머리가 커서 붙여진 별명.
왕대가리를 까딱까딱 흔들어 대며 투명기타를 치던 모습이 훨씬 멋있는 비주얼이 될 줄이야….
“오빠 그만해… 괜찮아… 알았어. 오빠 기타 칠 줄 알아 오래 쉬어서 그래. 그래 맞아 손이 덜 풀린 거야.
오늘은 그만해. 빗소리에 오빠 기타 딩딩대는 소리까지 이제 머리가 아플 지경이야. 이리 와 같이 소주나 마저 같이 마시자. “
“잠깐만 좀만 하면 될 거 같아 아씨 왜 이러지 오늘..”
그날 남편은 나 혼자 남은 술을 다 마시고 취해서 쓰러져 잘 때까지 기타를 붙잡고 있었다.
남편의 성격은 치밀하고 계획적인데 집요하기까지 하다. 그 노매 안 되는 기타는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나랑 오순도순 빗소리 안주삼아 첫 여행을 즐겨야지 왜 되지도 않는 기타랑 씨름을 하고 나는 혼자 소주를 마시고 기절해야 했냐고….
그날이 우리의 첫 커플여행 두 번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