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첫 줄을쓰는용기

by 천천히 한걸음

늘 글 쓰기가 두렵다.
첫 줄을 시작하기가 어려워 망설이고 망설인다.

시작이 어려워 생각나는 주제의 키워드만 수첩에 쌓아 둔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다.
맛있게 먹은 점심 불고기 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다.
여느때 처럼 책을 들고 앉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시방석이다

무엇인가 간절하게 쓰고 싶다
울컥하게 무엇인가 간절하다
특별히 그럴 일도 그럴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날씨를 탓하기는 참으로 진부하다.
뭐라 표현할 길이 없어 눈 앞머리가 시큰하다.

강원국은 첫 줄을 쓰는 용기에 대해 말했다
강원국의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용기를 내어 본다.
오늘 들고 앉은 책이 담백하고 깔끔하여 더욱 그러하다.

본체 전원은 켜두고 모니터 전원만 잠시 끈 상태가 지금의 나와 같다.
점심시간 책과 하는 잠깐의 이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까
몇 평이나 될까? 나의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공간은.

불과 30분전까지 해냄과 이겨냄의 공간이었던 나의 책상과 의자는
문장과 문장을 이어 벽을 짓고 행간으로 지붕을 올려 나만의 성으로 변신한다.

큰 컵에 뜨겁게 담은 커피 연기는 성에서 올리는 봉화
덮고 앉은 무릎 담요는 성의 정체를 알리는 휘장이다.
말을 타고 달린다 유럽으로 잔다르크가 재판장에 서 있다.
중국으로 가보자 허삼관이 매혈을 한다니
공부머리를 틔어 주는 독서법은 무엇이더냐
시간도 공간도 제약이 없는 성의 마법에 온몸이 휘둘린다.
훨훨 날아 올라 보자 즐거워 소리치고 싶어질 때 즈음 1시간이 끝이 난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성의 침략자들이다.
봉화가 식어가고 휘장이 고이 접혀지고 성문이 닫힌다.
내일 이 시간 다시 지어질 성에 그대로 멈춰라
겸손하고 맑은 얼굴로 성문을 열 주인을 기다리며 그래도 꼭 멈춰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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