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식이 끝나고 엄마가 학교 앞 문구점에서 학용품을 사 주셨어요. 처음으로 가져보는 학용품을 방바닥에 펼쳐 놓고 한 껏 들떠있었죠. 면소재지에서 가장 큰 건물이 내가 다닐 학교라는 것에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한 시간 이상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도 걱정보다 기대가 컸어요. 동네 언니, 오빠들이 다 그랬고 나도 아이들과 같이 걸어 다닐 거니까 원래 그런 건가 보다 했을 거예요.
저녁을 먹고 첫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가방에 넣고 있을 때, 아빠가 소보로빵 한 봉지를 신문지로 접은 배에 넣고 일어서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은정아, 내일 이 배에 빵을 담아서 교문 앞으로 갈 거야.”
“왜?”
“빵 팔려고.”
“빵을 왜 팔아?”
“돈 벌려고. 나 1학년 고은정 아빤데, 돈이 없어 그러는데 이 빵 좀 사줄래?”
하루종일 설레던 마음에 불안이 새까맣게 들어찼어요. 평소에 엄하신 분이라 가지 말라고 떼 한 번 못 부려 보 고 잠자리에 들었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가 안 계셨어요.
‘벌써 출근하셨나? 아! 학교에 빵 팔러 갔나?’ 심장이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쿵쾅거렸어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앞. 뒤의 교문을 살펴봤는데 다행히 아빠는 보이지 않았어요. ‘아직 안 왔나? 진짜 오면 어떡하지? 창피해서 싫은데. 아니 근데 우리 집에 돈이 그렇게 없나?’
수업시간 내내 창밖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쉬는 시간에는 학교담벼락에 숨어 고개를 쭉 빼고 교문밖을 내다봤어요. 그러다 용기 내 교문 밖까지 나가 까치발 들고 사방을 살펴봤는데도 아빠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벌써 다녀갔나? 애들이 봤으면 어쩌지?’ 터덜거리는 발걸음이 교실로 가지 말고 어딘가로 숨어 버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모두 깔깔대는데 나는 웃음이 나질 않았어요. 하굣길에도 교문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어요. 그날은 온통 그놈의 빵 생각뿐이었어요.
두어 달 전, 부모님과 소보로빵을 먹는 중에 그때가 떠올라 말을 꺼냈더니
“그런 일이 있었냐? 기억 안 나는데, 나는.”
“아니, 어떻게 기억이 안 날 수 있어? 내가 그날 하루종일 얼마나 불안했는데.”
옆에 계시던 엄마가
“우리 은정이가 너무 진지했네. 나한테 물어보기라도 하지.”
“나 그날 되게 심각했다고. 아빠가 평소에 농담이라도 하는 분이냐고요.”
“늦은 나이게 널 얻었으니, 네가 학교 가는 게 좋았던 거야, 네 아빠는.”
엄마가 쏜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에 꽂히는 순간이었어요. 아빠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을 껌뻑이며 빵만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