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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Dec 27. 2021

고요의 바다

물이 없는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

넷플릭스 신작 드라마 고요의 바다를 주말에 완주했다.

평이 정말 갈리더라. 아니 사실은 매체에는 심각하게 악평이라 약간 불쌍하기도 했다.

뭐 어떤 면에서 그런지는 나도 느끼긴 했다. 전체적인 그림이나 큰 스토리라인은 참신하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라든지, 배경 설정 등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점들이 많았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우주 미래 배경 SF가 나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조금은 아쉬웠던 부분이다. 

역시나 디스토피아적인 SF였다. 지구의 환경이 파괴될대로 파괴되어 물 부족이 심각해진 미래를 배경으로 설정했다. 대부분의 SF가 다 그렇다. 기계문명의 발달의 끝에 파괴된 자연, 인간성, 생명의 씨앗이 될 만한 것들이 남아있지 않은 그런 세상을 그리고 있다. 일단 영화의 배경에 총천연색이 별로 없고 다 검정색, 회색, 금속성의 색깔만 등장하니 그다지 보고 싶지가 않아진다. 미래를 그리는 영화들은 왜 하나같이 이런 것일까. 진짜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여러 디스토피아적인 요인 중 이 드라마는 물 부족을 가장 심각한 재앙으로 보여주었다. 결국 우주로 나가서 어떻게든 지구에 없는 물을 찾아오는 상황으로. 

물 부족도 최근 몇 년 간 심심치 않게 들려왔던 주제이긴 하다. 이미 전세계에 물부족이 심각한 국가들이 많다고 하고 그 중 우리나라도 포함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실 그걸 체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가장 크게 변화를 느낀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생수를 사먹는 것이 너무나 일상화 됐다는 것? 내 기억에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생수를 계속 사먹는 것은 보편적이지는 않았었다. 생수 사먹는 것을 두고 조선 시대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 팔았던 이야기를 견주면서 너무나 큰 변화라고 봤던 글들도 있었다.

먹는 물은 그렇다 치고 요즘 새삼스럽게 물 부족을 묘하게 느끼는 것은 일상 속에서다. 평생 구축 아파트에서 살았던 나는 수압 걱정은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처음 신축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었고 이후 감질나는 물 부족에 시달리다가 그냥 적응하여 살고 있다. 

우리 집은 샤워를 할 때에는 크게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물이 나온다. 그렇지만 동시에 세탁을 한다거나 설거지를 하는 경우 물의 양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자연히 화장실이 두개여도 동시에는 쓰지 않게 되었고 주방과는 무조건 따로따로 쓰게 되었다. 관리실의 이야기로는 물을 아끼기 위해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세대 별로 한 번에 쓸 수 있는 물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지금 그 최대치까지 밸브가 열려 있으니 이 이상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음.. 그 대답엔 할 말이 없었다.

주로 쓰는 욕실에는 욕조도 깨끗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몸이 으슬으슬할 때 가장 효과적인 보온은 물이기에 난 목욕이나 반신욕을 시도했으나 황당하게도 욕조에 설치된 수도꼭지가 세면대 수도꼭지가 동일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건 잘못 설치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애초 그 사이즈로 설계된 것 같았다. 못 잡아도 용적이 10배는 되는 욕조에 세면대용 수도꼭지를 달다니. 이것도 물 아낌의 일환인 것일까? 매우 자연스럽게 집에서는 목욕은 하지 않게 되었다. 

당장 생존에 문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살고는 있지만 가끔씩 샤워를 하면서도 몸을 확실하게 두드려주는 따끈한 물줄기가 그리울 때, 그리고 뜨거운 물 속에 푹 몸을 담그고 싶어질 때. 난 그냥 옛날에 살았던 집 생각만 하면서 아쉬워한다. 휴가 계획 중 제일 1순위로 올려놓은 것이 일본의 온천 여행인데 언제나 가능해지련지. 최근에는 그런 걸 바라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지 노천 온천탕을 설치한 고급 숙박업소들이 국내에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고요의 바다를 보면서 아주 미세하게나마 물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 난 살고 있구나, 새삼 느꼈다. 내가 원할 때 뜨거운 물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이미 사라졌다. 어쩌면 우리 아파트가 문제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이런 일은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반대로 가진 않을 것이다. 

유토피아를 그린 영화는 모두가 자연이 푸르고 풍성하고 옛날식 집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서로 가깝게 사는 모습이 나온다. 디스토피아 영화에는 자연은 모두 망가져서 우주 혹은 기계 배경만 남아 있고 사람들은 분절되어 살아간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의 본질적 행복에 뭐가 중요한지는 다들 아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큰 흐름은 디스토피아 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소수의 자본을 위한 방향인 것일까? 이미 자본가인 사람들도 본인과 후손들이 살아갈 환경은 분명히 중요할 것 같은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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