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를 타러 가자
반짝 찾아온 맹추위에 이어 어제는 오랜만에 눈이 펑펑 내렸다. 겨울마다 눈이 왔었던 거 같은데 왜 이번에는 오랜만의 눈이라고 생각했을까. 의외로 연말이라고는 해도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지는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눈이 내려도 출근을 하면 그걸로 주위의 풍경이나 정취는 많이 씻겨 버린다. 바쁜 일상이 그 위를 덮어 버리는 건지도. 눈은 함박눈으로 많이 내려야 제맛이고 날은 추워야 하고 나는 하는 일 없이 따뜻한 집 안에서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그건 예전 겨울방학이 있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어제는 딱 그런 조건들이 맞아 떨어진 토요일이었다. 오랜만에 큰 일 없이 재택근무를 하고 또 방역조치와 더불어 반강제적으로 조용한 집안에서의 시간을 가지는 주말. 마침 추위와 눈이 함께 하자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옛날부터 내가 좋아했던 겨울만의 정취가 살아나 너무나 반가웠다.
어느 정도 대단지임에도 아파트 안은 생각보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 최근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도 하얀 눈이 폭신하게 덮일 정도로 내리자 드물게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신이 나서 눈사람도 만들고 이리저리 눈덩이를 던져보기도 하고 썰매를 들고 나온 아이들도 꽤 있었다. 비록 놀 수 있는 널찍한 공용공간이 거의 없는 신축 단지지만 눈이 주는 효과는 마치 마법 같았다.
나는 눈신으로 삼을 만한 방한 부츠를 신고 동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왔다. 높은 비탈길에서는 차들이 바퀴가 돌아가지 않아 쩔쩔매고 있었다. 이상하게 눈이 내린 날은 천지가 조용하다. 쨍하게 밝아진 하늘과 차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눈 위를 뽀득뽀득 걸으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매년 봐왔던 동네의 풍경인데도 어딘지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워보였다. 공원에는 역시 눈놀이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이었다.
온갖 기계 디지털 문명과 소비가 요란한 시대지만 역시 사람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건 자연이다. 먼 옛날부터 내리고 또 내렸을 이 함박눈이 어쩜 세상을 다른 곳처럼 바꿔놓고 이런 즐거움을 주는지. 평소엔 잘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 가족들이 나와서 웃고 노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생각해보면 변화가 빠르고 정신없다고는 하나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걸 해나가는 건 그냥 나의 몫일뿐. 잠시 가라앉았던 기분을 되살려준 반가운 눈이었다. 가득 봐온 장으로 하나씩 끼니마다 음식을 해먹는 재미도 좋은 주말이다. 이런 즐거움을 잊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눈덩이처럼 불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