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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Oct 24. 2019

작가와의 만남

최근 읽었던 책 중에 재밌게 읽었던 것이 바로 최민석 작가의 에세이였다. 맘에 드는 작가가 생기면 또다른 시리즈를 계속 기대하며 보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베를린 일기, 꽈배기 시리즈까지 재미나게 읽었는데 그게 아마 올해 초였고, 그러다가 그분이 운영하는 블로그도 알게 되었고 글쓰기 강좌를 한번 들어볼까 그러고 있다가 이번에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또 하나의 공간 스테이폴리오 소속 서촌도감에서 독자들과의 만남 행사를 한다기에 대뜸 신청했다. 사실 난 이런 쪽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어떤 모임도 행사도 가본 적이 없다. 참으로 나도 행동을 못하는 타입...

아무튼 그런데 신청하고 나서 나중에 보니까 그날은 우리 종합감사 전날이었다.

우리 부서는 감사를 위해 존재하는 부서이므로 사실 옛날 같았으면 당연히 부서원 전원이 전날은 밤까지 대기하는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최근의 주52시간제 및 워라벨을 강조하는 문화와 캠페인의 확산으로 나는 운 좋게 8시쯤 퇴근을 할 수 있었다.

행사는 7시 반 시작이었기 때문에 사실 속을 많이 졸였다. 막판에는 결국 어차피 눈치 볼거 맘 편하게 못 가는 것으로 생각하자,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어정쩡하지만 8시쯤 나가게 되자 택시를 잡아타고 바람처럼 서촌으로 날라갔다.

그래서 난 정확히 행사 2부가 시작하는 때에 그 장소에 도착했다.

1부는 베를린 일기 낭독이었다고 하고 2부는 5행시 짓기 및 작가와의 질문 및 대답 시간이었다.

너무 급하게 도착해서 원래부터 잘 못하는 5행시는 물론이고 질문을 뭘 적을지도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서촌도감은 생각보다 자그마한 공간이었고 작가를 앞에 바라보며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는 구성이었다. 신기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도대체 이런 행사는 어떤 느낌일지 전혀 감이 안 왔었기 때문에.

모두가 제출한 5행시를 최민석 작가께서 읽고 서로 웃고 시상하고 그 다음엔 질문을 차례대로 읽으며 그에 대한 답을 하고 행사는 끝났다.

흥미로운 저녁이었다.

일단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모든 것이 달랐다. 심지어 책에 실린 사진으로 봤던 작가님도 실제 보니 느낌이 매우 달랐다. 내가 문체로 느꼈던 거랑도 좀 달랐다. 뭐 당연한 것이겠지만 ㅎㅎ 

그러나 그날 내가 원했던 것은 그냥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뭐가 됐든 내가 관심 가지는 세계를 실제로 접해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선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참석한 사람 중 2명을 제외한 전부는 20~30대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나는 마치 연예인 팬클럽 미팅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 중 몇 명은 글쓰기 강좌 등을 통해 이미 작가님을 아는 것 같았다. 어차피 이 만남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을 만나는 자리니까 그렇겠지. 다만 난 뭔가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자리를 상상해서 그런지 그보다는 팬미팅에 가까운 현장 분위기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질문은 다양하게 쏟아졌다. 그리고 내가 물어보고 싶었던 몇 가지 질문들도 다 앞사람들에 의해 다루어졌다. 주로 작가가 된 계기라든지, 무슨 일을 하다가 작가가 되었는지, 작가가 되기 위한 자질, 글을 쓸 때의 어려움 같은 것이었다. 역시 이들도 모두 작가 지망생들인 것일까?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다들 생기넘치고 발랄한 대학생 같아보였다.

재미있었던 것은 사실 그 질문들에 대해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님의 뮤즈는 누구며 사랑을 나누었던 사이였는가와 같은 질문이 아니고서는 사실 그 자리에 나왔던 질문들은 대부분, 내 스타일에 맞춰 내가 알아서 해보며 깨달아간다-가 정답인 것들이었다.

이 분 또한,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으며 공통적으로 느꼈던 작가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 특유의 유머는 어떻게 나오느냐는 질문에 대해 실은 본인은 평소에 사람들과 있을 때는 그렇게 유머를 터뜨리지 않는다며, 만일 말로 그걸 다 풀어냈다면 글 속에 녹여낼 욕구가 있었겠는가 하는 답변이 맘에 남았다. 그리고 작가란 대개 혼자 있는 것을 편하게 느끼며 많은 시간을 홀로 지낸다는 것. 그리고 그래야 그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다시 한번 그분의 말로 듣고 맘 속에 재확인했다.

난 책이 좋고 글이 좋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난 사람이 좋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나에게는 인생의 활력소고 인생을 배워가는 가장 큰 길이다. 혼자 틀어박혀 뭔가를 하는게 싫어서 난 유학을 포기했고 썩 잘 맞지는 않지만 직장생활을 이렇게 길게 이어왔다.

지금도 언어와 문화와 통찰력과 공감능력을 주로 쓰는 분야에 가고 싶고 책과 글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지만 왠지 난 전업작가가 되기는 힘들거 같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다. 

그밖에도 살아온 길과 삶의 스타일 등 작가님의 여러 이야기들은 크게 놀랍지 않았지만 좀 더 내 생각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왔는데 질문 한개도 안 던질 수는 없어서, 사실은 이미 답을 알 것 같은 창작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질문을 또 던졌는데 그래서 작가님은 나도 지망생인줄 알았는지 나중에 책에 서명을 해주면서 건필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아무래도 난 작가가 될 인간은 아니라는 결론을 굳힌 끝에 건필 도장을 받고 도감을 나오니 이 날 저녁이 마치 한편의 코미디처럼 느껴졌지만. 이것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유머코드랑도 잘 맞아떨어지니. 뭐가 됐든 나에겐 만족스러운 행사였다고 할 수 있었다. 

너무나 늦게 비로소 내 인생을 어떻게 온전히 나답게 살 것인지 고민을 하고 오늘 그 일환으로 뭔가를 행동에 옮긴 것이다. 다양한 경험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무엇 때문인지 항상 겁에 질려서 온실의 가장 안쪽에서만 웅크리고 살아왔다. 아니면 그저 주위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유지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나 혼자 해야만 하는 내 인생 살기를 가장 뒤로 미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답을 알면서 참여했던 작가와의 만남. 그냥 그렇게 훌쩍 혼자 달려간 서촌의 밤은 그래서 참 좋았다. 

작가님도, 모여든 팬들도, 모임의 분위기도 내용도 모든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매우 달랐다. 그리고 난 즐거웠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나 이제는 내가 한발 한발 직접 가보고 경험하면서, 아직 늦지 않았으니 나다운 인생을 찾아보고 만들어보자고 생각하며 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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