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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Nov 09. 2019

미역국 끓이기

몸이 안 좋으니 비위는 점점 약해져만 간다.

컨디션은 회복됐지만 여전히 속은 좋지가 않아 사먹고 싶은 것도 없고 입맛도 없었다.

그래도 날씨가 추워지니 이상하게 집에서 뭘 해먹고 싶길래 그대로 실행했다.

내가 예전부터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3대 국이라고 평했던 미역국.

몸 아플 때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미역국. 항상 엄마가 끓여준 것만 먹었었는데 드디어 직접 만들어보기로 하고 도전. 사실 미역국은 쉽다. 육수만 선택하면 된다. 고기냐 해물이냐.

그 담엔 미역을 넣고 오래 달달 끓이기만 하면 점점 맛이 깊고 좋아지는 국.

욕심스러운 나답게 집에 있는 쇠고기를 썰어 달달 볶은 후에 마침 또 집에 있는 육수팩을 이용해서 우려낸 해물육수를 부어 미역국을 끓였다. 지난번에 엄마가 갖다준 완도미역 남은걸 불려서 전부 투척.

빻은 마늘 좀 넣고 약불로 30분 정도 끓였더니 거의 작품 수준의 미역국이 완성되었다.

너무 대견하고(?) 기쁜 마음에 춤을 추면서 역시 나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며 좋아했는데 방심한 나머지

마지막에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항상 느끼지만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는게 첫번째고 그 다음은 간 맞추기다. 두 개만 잘하면 요리는 끝이다.

마지막에 진하게 우려진 미역국을 맛보며 간을 맞추는데 흔히 들었던 대로 간장을 살짝 넣었다.

집에 있는 간장은 마침 저염 다시마 간장이었다. 그래서인지 넣어도 별로 간이 맞춰지지가 않았다.

아, 이때부터는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간장을 계속 더 넣고 말았다.

아직도 완전하게 간이 맞진 않는데도 이미 눈에 띄게 국물이 탁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간장 특유의 뒷맛이 강하게 나면서.... 에고. 그제서야 간장은 처음에 조금만 넣어주고 그 다음에는 소금으로 간하는 거라던 엄마 말이 생각이 났다. 쩝... 이미 국물은 검은 갈색이 되어버렸고. 할 수 없지.

좋은 고기에 좋은 미역으로 끓여서 그런가 점심은 그럭 저럭 잘 먹고 넘어갔다.

그러나 저녁에 한번 더 먹으려고 퍼보니 맛이 아주 묘하게 진화한 것이었다. 남은 건 얼려놓고 두고두고 먹기 위해 한 솥을 끓였는데 이런 이런 이런!

역시 실패 없이 잘하는 것이란 없다. 직접 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명장은 탄생하는 것이다.

요리든 사업이든 주식 투자든.

그래도 어떤 메뉴든 생각보다 쉽게쉽게 만들어지는 건 참으로 신기하다. 보고 배우는 게 무섭다고, 뭐든 있는 재료만 가지고도 쓱쓱 만들어 내놓던 우리 엄마의 요리방식이 이미 내게도 전수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간 맞추기. 너는 욕심만 버리면 어떤 음식이든 성공할거라는 엄마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두번째 미역국은 깔끔하게 성공할 자신이 있다. 그래도 몇 달만에 돌아온 요리 시간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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