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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Nov 24. 2019

청국장

11월말치고는 따뜻했던 토요일이 지나가고 일요일은 아침부터 날이 흐렸다. 심했던 감기몸살이 하루를 앓고 나자 조금 고비를 지나는 느낌이었다. 밤동안 코와 목이 건조하고 아팠지만 아침에 뜨거운 물로 오래 씻고 머리를 감자 코가 뚫리고 머리가 시원해졌다. 어제 점심에 뜨거운 추어탕을 먹고 좋은 차도를 보았었는데 오늘은 집에서 먹을까 하다가 오랜만에 청국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는 직접 띄워 만드는 주인장의 자부심이 가득한 청국장 식당이 있다. 이름은 두메산골. 깐깐한 사장님은 충청도 분이신것 같은데 그 깐깐한 응대로 몇몇 주부들은 가기가 꺼려진다는 말을 동네 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약간 면박을 주는 듯한 말투가 항상 변함이 없다. 1인분씩은 팔지 않아 모르고 혼자 들어온 손님은 사장님에게 칼같이 거절당하고 나가기도 한다. 한편 주력메뉴인 청국장에 대한 사장님의 자부심은 대단해서 한번은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러시아인 관광객이 웬일인지 식당에 들어왔는데 손짓과 발짓을 동원해가며 몸에 좋은 청국장을 꼭 먹어보길 권유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한식보다는 양식 쪽에 가까운 입맛을 가진 남편이 이상하게 좋아하는 한식 메뉴 중 하나가 이 청국장인데 이사와서 여기 청국장을 한번 먹어보더니 어느 청국장보다도 이곳을 최고로 친다. 까다롭지 않은 사람임에도 좋아하는 메뉴 쪽에 호불호는 확실하다. 보통 식당에서 내오는 청국장은 된장과 고추를 사용해서 칼칼한 된장찌개처럼 나오는 반면 여긴 그야말로 진짜배기 청국장처럼 하얗고 진한 국물로 나온다. 작은 두부와 채소가 알차게 들어간 진한 청국장은 꼭 콩국수 국물같기도 한데 한번 보글보글 끓으면 바로 끄고 함께 나오는 공기밥을 대접에 퍼서 김가루, 무채, 콩나물과 함께 비벼먹는 것이다. 고소하고 진한 국물을 먹고 나면 바로 장이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청국장은 오래 끓이면 콩의 좋은 효능이 다 사라진다고 사장님은 항상 일러주며 지금 먹으라고 가스불을 직접 꺼준다. 어찌됐든 주력 메뉴 청국장을 먹어야 이 집에선 괜찮은 손님 대접을 받는 셈이다.

마침 나도 청국장을 좋아해서 우리 부부는 종종 생각날 때마다 이곳에 가서 청국장을 먹었다. 그렇게 특별한 청국장이지만 역시 모두가 즐기는 메뉴는 아니라서 그런가 이 집도 김치전골, 계란찜, 전, 쭈꾸미 볶음 등 기타 메뉴가 의외로 많다. 중림동 먹자골목의 살짝 낡은 분위기에 어울리게 가게의 외관도 간판 외에 여러가지 메뉴가 함께 여기저기 붙어있어 이곳이 청국장 전문점인지는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몇 달 만에 간 두메산골에는 또다른 입간판이 추가되어 있었다. 도드람 한돈 삼겹살 메뉴였다. 

"저녁용인가?' 하며 들어가는데 벽에도 칼국수에 보리밥 메뉴가 추가되어 이곳 저곳 붙어 있었다. 메뉴판 밑에는 청국장의 효능에 대해 자세하게 써놓은 글이 붙어 있었으나 이제는 늘어나는 메뉴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우린 언제나처럼 청국장을 2인분 주문해 열심히 먹었다. 그때 8명 단체 손님이 우르르 들어왔다. 사장님은 언제나처럼 주문을 받으면서 우리집 주력메뉴는 직접 띄운 청국장이라며 똑부러지게 권했으나 손님들 또한 똑부러지게 김치찌개를 먹으러 들어왔다며 전골 8인분을 주문했다. 

사실 밖에서 걷다가 들어온다면 청국장 메뉴를 눈여겨 보고 들어올 사람은 거의 없을 거 같았다. 많은 메뉴가 고르게 붙어있는 외관 때문에. 외관도 내부 인테리어도 오래된 동네의 오래된 식당처럼 아주 전형적인 편안한 한식당의 그것이었지만 괜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되짚어보니 나도 이사와서 친구들 모임을 이 동네에서 할 때마다 리스트에 항상 이 식당을 올리고 권유했었으나 꼭 한 명은 청국장을 기피하는 친구가 있어 결국 한번도 오질 못했었다. 참 구수하고 몸에도 좋은 음식인것 같은데 의외로 대중적이지 않은 메뉴인 것이다.

잘 먹고 나와서 남편과 그 얘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이 집의 청국장은 아쉽다. 청국장 단일메뉴로 통일하고 인테리어도 깔끔하게 싹 바꾼다면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더욱 장사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나의 말에 남편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처럼 한번 코치를 받으셔야겠네 하면서 웃었다. 그렇지만 사장님의 꼬장꼬장한 성격상 만일 골목식당 중림동 편을 한다고 해도 방송이고 매출이고 그런거 더 필요없다며 단칼에 자를 것만 같았다. 이 동네 사는 동안에는 자주 가서 먹어두고 싶은 그런 청국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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