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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Dec 21. 2019

연말을 맞아 이승철 콘서트를 다녀왔다.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실황으로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몰랐는데 작년에 성대결절로 수술을 하고 거의 은퇴할 뻔 하셨다고. 그런 큰 일이며 나이를 감안해도 참 대단한 가수였다. 공연의 구성이나 진행, 무대매너가 다 나무랄데 없이 원숙하고 좋아서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다만 나는 오늘도 맞춘듯이 너무 원통하게 몸이 너무 아팠다. 아마도 독감이었던거 같다. 팀을 옮기고 두 주 가량 야근을 좀 했더니 바로 걸려버렸다. 11월 초부터 부서에서 끝없이 감기가 돌고 도는 중이었다. 어처구니 없는건 난 11월 셋째주 주말에도 감기에 이미 걸려서 주말에 침대 밖으로 못 나가고 심하게 앓았었다.

코가 그냥 막히는 것이 아니라 두통이 심하게 올 정도로 막히고 그래서 귓구멍까지 멍하게 막히고 코부터 목까지 모든 통로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갑게 아팠다. 처음엔 감기라고 생각했었지만 아니었던 거 같다. 하필 일년에 딱 한 번 공연 예매한 날에 맞추어 이렇게 아프다니. 너무 아까워서 나한테 옮아서 같이 아픈 남편과 이를 악물고 공연장을 다녀왔다.

예전 자우림 공연장에 갔었을 때도 그랬지만 에너지가 폭발하는 예술인들의 공연을 보면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꿈을 대리체험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안에 있는 걸 어떻게든 발산하고 싶은데 몸에 갇혀서 내보내지 못하는 것들이 아주 조금 흘러나온다. 말로도 잘 표현이 안되는 것이라 공연을 보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따라 부르다보면 그냥 그 응어리진 것들이 눈물로 흘러나온다. 아마 이런 게 카타르시스인가보다.

나는 수렴형이기보다는 발산형인 사람이고 그래서 호기심도 많고 원하는 것들을 보면 대개 외향적인 것들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바깥 활동을 다양하게 하고 무대에도 올라가고 싶고 주목도 받고 싶어하는 성질이다. 그렇지만 구조적으로 약하고 예민한 몸으로 태어났다. 평소의 생각이나 말하는 것과 현실에서 나의 행보는 항상 좀 안 맞았다. 뭐랄까. 생각만 많이 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건 없거나, 혹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항상 70% 정도로 하다 마는 느낌이랄까. 무엇이 됐든 내가 맘에 끌리는 대로 솔직하게 원없이 시도해보고 끝내면 결과야 어떻든 뒤끝이 안 남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은 항상 어설픈 미완성이었다. 깨끗하게 연소되지 못한 욕망의 찌꺼기들이 내 안에는 항상 쌓여서 큰 불꽃도 아니고 미미한 불씨로 가릉거리면서 끓고 있었다. 언제부턴가는 젊은 나이지만 체력의 한계를 고려해서, 그리고 통증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방어적인 선택을 하다보니 어느덧 진짜 하고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뭘 하며 살았어야 하는지 불분명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가끔 이렇게 에너지로 꽉 찬 사람들이 그걸 맘껏 발산하는 걸 보면 잊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저릿하다. 감성형이라 그런가 음악이 특히 그렇다. 노래방에서 마음껏 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렇고 참으로 아쉬운 적이 많다. 체념을 거듭하다가 비로소 무의 상태에 이른 것처럼 평화롭고 조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싫은데...

오늘도 열이 심하고 너무 아픈 가운데 공연을 보니 눈물이 아주 잘 났다. 문득 악마가 건강한 몸을 주겠다고 유혹한다면 나도 파우스트처럼 계약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간절하게 원하는 데도 주어지지 않는 것들이 많으니 역시 인생은 비극적인 요소가 많은 게 사실인거 같다. 그걸 달래려고 음악도 하고 글도 쓰는 것인가? 작가의 유형에 대해서도 써보겠다 생각하고 결국 안 썼네. 나라는 사람은 혼자 조용히 앉아 뭘 못하니 글 쓰는 것도 길이 멀어 보인다. 나에게 인생은 통째로 하나의 큰 꿈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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