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크 Jan 26. 2020

외로움

외로움 때문에 초라해지고 꼴사나워진 요즘이었다. 어제 내가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자꾸만 일이 흘러가고 꼬여버린 것 때문인지 급기야 꿈속에서까지 같은 주제로 시달렸다. 원래 현실과 연관된 주제로 꿈을 잘 안 꾸는 편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확실히 현실에서 힘든 것들이 꿈에도 나와서 괴롭힌다. 꿈은 현실에서 해소되지 못한 것들을 청소하는 과정이라는데, 이게 청소가 되는건지 그저 시달리기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젯밤 꿈에는 회사 사람들이 한 무더기 등장해서 계속 내가 소외되고 허둥거리다가 아침에 깼다. 어제 점심에 겪은 일 때문이다. 몇 년도 더 되어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문제인데 그건 바로 점심에 밥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마다 좀 다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순환보직에 서로 누가 누군지 알 정도의 크지 않은 조직이라 그런지 부서나 팀이 함께 점심을 먹는게 아니라 각자 약속을 잡아 따로 먹는 분위기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더 그렇다. 비슷한 기수의 선후배끼리 밥을 사주기도 하고 업무로 연결된 사람끼리, 전 후임자끼리 등등. 순환보직 시스템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계속 얽히고 섥히는 구조인데다가 동문, 지역, 종교, 친분 각종 변수가 더해져 그렇게 굳어진 것 같다. 

아무튼 신입 때, 그리고 초반에는 재미있고 좋았다. 밥 먹을 사람 구하기도 쉬운 편이었고. 그러나 연차가 더해지고 결혼, 출산, 해외파견 등 각자 가는 길이 달라지면서 점점 친한 사람도 줄어들고 약속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어느새부턴가는 약속 잡는 피곤함 때문에 운동이나 어학 등 점심시간에 무언가 잡아놓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컨텐츠가 좋으면 다행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점심은 시간 제약상 대충 때워야 한다. 그게 아니면 편하게 혼자 먹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갖가지 활동을 다 시도해보았으나 교통이 안 좋고 유동인구가 적은 우리 회사의 위치 특성상 주변에 오래 할만한 곳은 찾지 못했다. 게다가 원래부터 사람 만나 수다 떨고 맛있는 거 먹는게 낙인 나로서는 딱히 혼자 하는 활동으로 점심을 대체하는게 달갑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혼자서 시간 보내는 쪽으로 방도를 찾아갔고 설상가상으로 몇 안 되던 나와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만두거나 먼 곳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몇 년을 불만족스럽게 힘들게 보내던 터였다.

어제도 또 그런 날 중 하나였었다. 약속은 없고 아침부터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니 점심시간은 다가오는데 혼자 먹기는 싫고 해서 몇 친한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두 약속이 있다고 하는 그런 날이었다. 

예전엔 매우 친했지만 어느새 가는 길이 달라지고 하면서 예전같지 않아진 동기에게 고민하다가 약속 있냐고 하니 역시나, 다른 사람하고 먹을 건데 같이 먹자고 한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이 사람은 약속이 없을 때 나한테 물어보지는 않는구나- 하는게 참 묘한 서운함을 들게 한다. 물론 전혀 서운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항상 그렇듯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느끼는 것은 다르니까.

아무튼 다 좋은 언니들이고 하여 그러자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다른 사람은 운동을 마치고 나서 식당에서 먹는 거라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먹어야 하는 거였다. 그날 따라 배는 왜 그리 고프던지. 동기가 은행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시간을 때우다가 겨우 식당에 가서 앉았는데 그 시간에 운동 끝나는 사람들은 다들 우르르 몰려와 함께 먹는지라 셋이서 먹는게 아니라 전혀 예상못했던 다른 사람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와서 합석을 했다. 하필이면 이 사람은 내가 정말 불편한 사람이었다. 별 생각 없이 하나를 집었다가 무언가 줄줄이 하나씩 달라붙어 와서 나중엔 내가 벙쪄버린 셈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다 귀찮고 차라리 샌드위치 사서 혼자 먹는다고 하는구나. 그 생각이 들었다. 그 혼자 먹는 걸 못 참아서 어설프게 손을 뻗쳤다가 이렇게까지 불편해지고 또 불편해져서 밥을 먹게 되다니- 참으로 서글프단 생각이 들었다. 다들 외롭다고는 하지만 그냥 편하게 점심먹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너무 외로운 일이다. 회사를 10년을 넘게 다니면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애초, 딴 것보다도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말에 사람에 약한 나는 적잖이 솔깃해서 여길 지원하기도 했었는데.

이미 홀로서기 해보자고 노력한지는 수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익숙해지지 않는걸 보면 이건 내 본성인것 같다.

그리고 시대의 개인주의 추세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더하여 이 직장의 패턴과 나도 썩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정말 추해지지 않으려면 외로움을 잘 견뎌야 된다고 하는데 아, 절절하게 알겠다.

내가 치고 나가든, 환경이 변하든 올해엔 무언가 자그마한 변화의 씨앗이라도 생겼으면 싶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