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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Jan 27. 2020

식탐

난 식탐이 많은 사람이다. 여러가지를 먹어보고 싶어하고 양도 푸짐한 걸 좋아한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그렇게 시원하게 먹으며 살진 못하고 있다. 보통 모임이 있어 식당에 가면 난 신이 나서 엄청 주문하도록 분위기를 띄워놓고 정작 음식이 나오면 젓가락은 금방 내려놓는 그런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신진대사가 좋아서인지 하루에 다섯끼씩 먹어가면서도 불편한 줄을 몰랐다. 먹고 몇 시간이면 또 배가 고프고, 밥 먹고 낮잠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소화가 다 되어 있고 그랬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자 점점 소화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30대가 되어 노화를 가장 뼈저리게 느낀 부분이 소화 속도였다. 기다려도 더 이상 배가 고프지를 않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난 위장이 약한 체질이라 스트레스가 다 위장으로 터지면서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었다. 그렇지만 타고난 식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스트레스를 상쇄하고자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식탐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밥 때가 되면 꼬르륵 소리가 나고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뇌속의 다른 시계만 예민하게 울린다. 뭔가 먹을 시간이다, 이거저거 먹고 싶다는 생각은 강하게 드는데 배는 조금도 고프지 않는... 아아 이건 정말 탄탈루스의 고문이다.

그나마 주중에는 출근을 하고 뭔가 일이 있어서 점심과 저녁에 배가 고픈 편인데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사태는 더욱 심해진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괜찮은 날들이 많다. 

설 연휴 앞쪽을 바쁘게 보내고 또 평소보다 배불리 먹고 났더니 뒷쪽 이틀은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마지막 저녁을 굶었어야 했는데 결국 뇌속의 시계가 계속 울려서 그걸 못 참고 동네 라면집으로 갔다.

츠케멘을 먹어야겠다, 하고 갔는데 이 메뉴는 먹고 난 후에 면 추가가 안되서 아예 처음부터 중/대 사이즈를 골라야 했다. 가격은 동일. 순간 또 식탐이 발동했고 난 크게 흔들려버렸다. 중 사이즈를 클릭했다가 고민하다가 결국 대 사이즈로 변경했다.

면을 수북하게 남기고 나오는데 너무나 서글퍼졌다. 대체 왜 이러나. 언제까지 식탐과 싸움을 계속해야 하나.

다행히 폭식의 상태까지는 간 적이 없지만 그게 무슨 기분인지는 알 것 같다. 배고픈 것과 식탐이라는 것은 매우 별개니까..

선천적으로 약한 위장과 치아가 내 식탐과의 괴리를 더욱 벌리는 바람에 괴로워 죽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만일 여기에 튼튼한 소화구조를 갖추었다면 난 정말 엄청난 뚱보가 되었을지도?

내일부터는 다시 저녁 운동 후에 늦은 시간 식사를 할 것인가를 두고 매일 고민이 시작될 것이다.

일단은! 올해는 슬림한 식단으로 가는 걸 다짐하면서 ㅎ 건강한 한 해를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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