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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Aug 25. 2019

무엇이 됐든

내가 몸담은 직장에는 책이나 글에 관해 이야기할만한 사람이 거의 전무하지만 다행히 취직전에 만났던 사람들 중엔 그런 친구들이 꽤 있다. 다들 다양한 곳으로 진출하기는 했지만 역시 지금이 마지막 진로고민의 시기라서 그런지 고민도 함께 하고 어떤 친구들은 이런 저런 시도를 이미 하고 있다. 어디에 몸 담았는지가 인생을 결정한다라고 느낀건 최근 그런 친구들을 만나서 내 고민에 대해, 그리고 글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였다. 

몸이 약하고 기도 약한데 어느 정도 현실적인 조건을 만족시키며 살려다 보니, 아니 사실 다 원서 넣었는데

합격한 곳이 여기 하나 뿐이라 나는 군말없이 금융공기업에 취직을 했다.

이곳은 굉장한 보수성향을 지닌 엘리트들이 취직하는 그런 직장이다. 뉴스에서 아무리 삼포니 취직이 안된다느니 인구가 줄고 있다느니 얘기하지만 이곳에선 별세계의 얘기일 뿐이다.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표에 따라서 정확하게 해야할 일들을 하고 지금은 육아와 부동산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계속 더 외로움에 시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의도적인건 아니지만 난 계속해서 소수의 길을

걸었으니까. 한편으로 취직이 안되고 진짜 힘든 길을 갔던 몇몇 친구들 눈에는 나는 가장 안정적인 길을 선택한 주류로 비춰졌다. 

어쨌든 글쓰는 것에 대한, 그리고 진로고민을 나누어보니 마치 그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깜깜한 무인도에 사는 듯한 나와는 다르게 언론이나 커뮤니케이션 등에 종사하는 친구들은 확실히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사실 주위 사람들이 어찌됐든 작가라면 정말 혼자서 꾸준히 글을 쓸거라는 게 내 생각이긴 하지만 나같은 관계형에겐 그게 또 크게 느껴졌다. 매일매일 절대적인 시간을 보내고 내 일상, 인생을 이루는 이 직장의 일과 분위기와 사람들이 결국 내 인생을 결정하는 큰 요소라는 것이.

대체 주위에 브런치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해 계속 네이버 블로그에만 머물러 있었던 나와 달리 다른 업종의 친구들은 이미 활발하게 이곳도 이용하고 있었고 그 외에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꽤 알고 지내고 있었다. 동시대에 똑같이 살고 있지만 너무나 삶은 달랐다.

20대 좀더 자유롭고 시간이 많고 내 삶을 설계하는 초창기일때 나는 겁많은 상태로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만 받아들이며 살았다. 비현실적인 몽상에 젖어서 내가 로망으로 삼았던 것들을 꽉 쥐면서 현실과의 큰 괴리에 괴로워하면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그때 그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고르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내 인생을 만들어나가지는 못했다. 대부분이 그랬다고는 하지만 이미 30대 중반이 되고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또 사람들의 말처럼 아직도 늦은 게 아니니, 내 생각에도 지금의 고민이 두번째이자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을거 같다. 행동력과 현실감이 부족했던 내 젊은 시절이 눈물나게 아쉽지만 지금부터라도 모드를 바꾸어 봐야지. 관심을 가지고 쑤시고 다니는 자에게 기회는 눈에 들어오고 무언가 사건이 생긴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일단은 무엇이 됐든 열심히 꾸준히 써야겠다. 그래도 난 약간의 곰의 근성은 있지 않은가?

괴롭게 괴롭게 버텼던 지난 십년 나에게 남은건 우직스럽게 버티며 다닌 이 직장에서의 경험과 추억들과 그리고 끄적거리며 계속 써댔던 내 귀여운 에세이들이다. 변덕스럽고 한우물 못판다 하지만 난 겁이 많아선지 그래도 꾸준히 뭔가를 하긴 한다. 이젠 나이가 좀 들었으니까 목표를 하나만 높여서 평생 끝을 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어떻게든 한번 써보자. 아무리 짧더라도 결말이 없어도. 무언가 시도해본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무엇이 됐든 열심히 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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