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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Sep 26. 2019

제주여행 : 프롤로그

 남편이 갑자기 이직을 하게 됐다. 2주간의 휴식기간이 생겼고 남편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여행을 가고 싶은 맘이 있긴 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발리나 방콕 등 동남아. 혹은 일본의 교토나 후쿠오카 유후인. 전자는 알아보니 최소 5일 정도의 일정을 잡아야 했다. 불행히도 난 일은 없으면서 휴가 내기에 눈치는 보이는 그런 상황이었다. 신기하게 일이 꼬일 때는 생각지도 못하는 방향으로 꼬여서 잘 안되기 마련인데,

마침 8월에 했던 연례 건강검진 결과에 처음으로 이상소견이 뜨면서 정밀검진을 받으라는 결과가 나왔다.

큰 병원에 첫 방문 한번, 정밀검진에 한번, 결과에 한번. 반차를 내더라도 세번 휴가를 써야 하는데 마침 딱 이 휴식기간이랑 겹쳤다. 거기에 이어서 동남아로 떠나기까지 한다면. 진정 나는 자유인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할 것으로 예상되는 뭐 그런 상황이었다.

사실은 일이 없어서 2주를 내내 비워도 되는 상황이라는게 나의 비극 중 하나였다.

일은 없으나 그래서 더 눈치가 보이고 하루 하루 앉아 있는게 힘든. 그래서 떠나고 싶지만 휴가를 낼 수는 없는. 참으로 이도 저도 아니고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웩웩웩.

결국 동남아는 접었다. 3~4일 정도로 다녀올 수 있는 곳. 일본 아니면 제주도다.

그래서 왠지 전부터 끌려왔던 교토랑 후쿠오카를 계속 뒤지고 다녔다. 

아니 왜 하필이면 이때 마침 한일간의 최대의 반목기가 시작이 됐는지. 네일동 카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운영자가 글을 올리고 카페를 무기한 닫아버리기까지 한 것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관광객이 50% 정도 감소했다하니 나머지 50%는 태연히 간다는 얘기겠지만 쫄보인 나는 또 고민고민하다가 그것도 접고 말았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제주도였다. 작년 5월에 역시나 황금연휴를 앞두고 급히 질러서 갔다가 너무나 감동하고 돌아왔던 제주도. 그래, 매년 가자고 맘먹었으니 이번에도 가자.

이미 내가 열이 붙어서 취소표를 광클하여 잡아내고 명상, 요가 리조트에 꽂혀서 예약을 다 할 때쯤 남편은 어느새 심드렁해져있었다. 2주의 휴식기간은 생각보다 짧았고 이래저래 사람들을 만나고 어쩌고 하다보니 더욱 짧게 지나가버린 거였다. 그래서 이젠 내 바램 때문에 가는 여행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어제. 검진으로 3번의 휴가를 재깍재깍 냈던 나는 마지막 결과로 아무 이상없다는 말을 듣고 따뜻한 거리로 나왔다. 물론 별 이상이 아니었다는 것은 너무도 기쁜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그 소식과 함께 2주의 휴식과 그토록 가보고 싶던 발리로의 여행계획도 날라간채 그냥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저녁이 되자 갑자기 남편이 카톡을 하다말고 말했다. "주말에 제주도 비온대"

뭐라고..?

몇 주 전에는 링링. 불과 지난 주말만 해도 이름없는 소형태풍으로 비. 그리고 개천절 태풍 가능예보까진 봤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은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네 하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 말을 듣고 일기예보를 보니 기가 막히게도 금토일 딱 3일만 모두 우산이 떠 있었다. 월요일부터는 다시 맑음.

이로써 나는 날씨 좋은 서울을 떠나 비가 내리는 제주도로 여행가는 웃픈 상황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그동안 내가 쉴새없이 검색해댔던 우붓의 요가원과 방콕 호텔과 치앙마이와 교토 에세이, 여행코스, 그리고 더 많은 유후인의 료칸과 온천들이 내 머릿속을 주마등 스치듯 지나갔다.

그렇게 해서 내가 악을 쓰고 가게 된 곳이 비오는 제주도라니. 타이밍도 기막히게 딱 비오는 금토일로.

너무나 기가막히게 일이 꼬이는 걸 보고 난 경탄했다. 올해는 역시 기가막히게 꼬이는 해로구나.

어처구니없는 발목 인대 부상과 부서 발령으로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했던 2019.

이번에 확실히 배운 것은 살다보면 분명히 운이 안 좋은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뭘 해도 잘 안되고 꼬이는 그런 시기인 것이다. 사실 이미 최악의 해는 경험을 해봤고 또한 그 해에 내린 크고 작은 결정들이 어이없을 정도로 웃기는 결과를 낳았던 것도 이미 경험했다.

그리고 올해도 꽤나 만만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그나마 병원을 밥먹듯이 갔지만 몸에 정말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은 하늘에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평생 좋은 날씨를 떠나 나쁜 날씨로 여행가는 것은 이번이 또 처음이다.

그렇게 난 내일 아침 일찍! 3일간 비 내리는 제주도로 떠난다.

나의 꿈 같던 올레길 오름 우도 여행은 모두 안녕- 

아마도 이번 제주 여행은 매우 색다른 여행이 될 듯하다. 그럼 이만 짐을 싸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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