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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Sep 27. 2019

제주여행 : 1일차-2

카페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숙소로 들어왔다.

이번 숙소는 취다선이라는 웰니스 리조트. 성산 앞바다에 면한 리조트이다.

처음에 여행 생각이 없었던 내가 제주여행을 추진하게 된 계기는 최근에 치유에 관심이 많은 것과 연관이 있었다. 지금까지 10년간 치이면서 나빠진 건강은 물론 거기에 이어 전문적인 내 커리어를 쌓을 수 없는 우리 직장의 특성, 그리고 가장 지쳐있을 때 기다렸다는 듯 발령이 난 이번 부서. (10년 중 가장 날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드는) 여러 복합적 요인으로 난 요새 삶의 낙을 오로지 요가와 글쓰기에 두고 있었다.

발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도 우붓의 요가원이 생각났었고 따라서 제주도에 있는 한주훈 요가원 등도 맘 속 관심리스트에 있었다. 요컨대 난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고 충전하며 가능하면 제주 요가도 병행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취다선은 그래서 검색하게 된 리조트이다. 와서 보니 요가클래스는 없다. 여긴 명상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리고 간단한 다도도 제공한다. 아무튼 쉬어가는 컨셉의 리조트는 맞다. 무엇보다 깔끔한 객실과 전망, 조식 등 여러가지가 훌륭한데 가격도 착하다. 한번에 예약하기가 힘들었었다.

지금은 7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남편은 짧은 2주간의 휴식기간 동안 매일 바쁘게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더니 이젠 피로가 쌓인 모양인지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고 있다. 이제 7시도 안된 이 시간에 지금 바깥은 형체를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다. 조금 전에는 천둥 번개까지 쳤다. 이렇게 무서운 비는 살면서 여름 중 강력한 태풍이 왔던 네 다섯 번을 제외하고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런 비를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이곳 제주도까지 와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비만 안왔어도 먹으러 가고 싶은 것들이 차로 10분 거리에 여럿 있는 이곳에서 나는 잘못하면 저녁을 굶을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속에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 어둠과 이 비를 뚫고 10분이라도 운전을 하러 나가는 것은 사서 고생하는 것이 매우 분명하기 때문이다.

위장이 안 좋아지면서 최근에는 기다려도 기다려도 배가 안 고팠었는데 참으로 얄궂게도 꼭 이럴 때에는 배가 쉬이 고파온다. 정말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묘한 저녁이다.

내일 아침에는 여기 온 목적대로 동적 명상 클래스를 예약했다. 명상 중에도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쿤달리니 명상이라고 하던데?) 명상이 있다는걸 몇번 봤었는데 어떨지 궁금하다. 처음에 웰니스를 생각하며 여길 골랐더니만 이 여름 태풍을 방불케 하는 날씨의 영향으로 내일은 명상과 다도로 오전을 전부 보내야 할거 같다.

리조트 안에서 무섭게 쏟아지는 비와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그냥 집에서 칼칼한 라면이나 끓여먹고 마루에서 이 글을 쓰고 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정말이지 오늘 내가 왜 여기에 있게 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여행은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저녁을 먹고 왔다. 하도리 쪽에 위치한 '소금바치 순이네' 라는 식당. 

아 여긴 정말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대표메뉴인 돌문어볶음을 비롯, 제주에서 먹을 법한 왠만한 해산물 및 식사 메뉴가 다 있는데 가격도 비싸지 않고 음식도 푸짐하고 사장님도 참 친절했다. 돌문어볶음은 소자를 시켰는데 너무 푸짐하게 나와서 순간 주문을 대 자로 잘못 받으셨나? 했는데 아니었다. 너무 자극적이지도 않고 적당히 매콤한 맛. 같이 시킨 성게미역국은 국물에서 바다냄새가 훅 나는게 진하기가 최고였다.

작년에 갔던 독개물항 등 몇 군데 바가지 쓰고 기분 나쁘게 나온 유명한 곳들과 달리 여긴 아주 만족했다.

먹고 나오니 비도 좀 잦아들고 왠지 기분이 편안해졌다.

리조트 로비에서 재밌어 보이는 책을 3권 들고 올라왔다. 이젠 맘을 놓고 편안히 쉬어야지.

그건 그렇고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을 딱 집어서 들고 왔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ㅠ

시대까지 내가 좋아하는 시대인데 왜 이리 지루한지.. 노벨상 수상작들은 영 케미가 맞질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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