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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농도

<6강 글쓰기 숙제> 간결하게 쓰기

by 은주

커다란 짐 가방 두 개를 트렁크에 넣었다. 아파트 위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난쟁이 의자에 앉아, 베란다에 일정하게 줄 맞춰 서 있는 철제 기둥을 양손에 하나씩 잡고 나를 향해 이름을 부르셨다. 행여 빠진 것이 없는지 물어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실은 차가 떠나도 엄마는 자리에서 떠나지 못할 것이다.

건강하실 때, 엄마는 늘 공항까지 따라오셨다. 그리고 공항 기둥을 붙잡고 오열하셨다. 누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매번 그렇게 슬플까 싶었다. 그 모습이 창피해서 서둘러 출국장으로 들어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반복되는 나의 출국이 엄마에게는 매번 이별이었을 것이다.

“네가 떠나고 나면 며칠 동안은 속이 쓰리고 짜.”

"짜다는 게 무슨 말이야?" 궁금해 물어본 말은 아니었다. 엄마의 표현이 재미있어 물어보았다.

아마도 가슴이 죄어와 속까지 아려온다는 표현일 것이다. 나는 엄마의 짜다는 표현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추측할 뿐이다.


본가에서 스무 번 넘게 다녀간 공항은 엄마에게 설렘과 이별이 뒤섞인 장소였다. 도착의 기쁨과 떠남의 슬픔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 늘 마음을 쥐어짜는 곳이었을 것이다.

이제 엄마는 공항에 가지 않는다. 누군가를 배웅하느라 서둘러 집을 나설 필요도 없다. 오지 않는 사람을 위해, 베란다 난간 옆에 서서 오래도록 경비실 입구를 바라볼 이유도 없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로는, 엄마가 먼저 문을 열고 나올 일이 드물다. 딸들 모두 엄마 집 현관 비밀번호 외우고 있다. 엄마의 비밀번호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제 공항 기둥 뒤에서 오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베란다 너머 작은 난쟁이 의자에 앉아, 조용히 혼자서 속이 짜다고 말하고 계시겠지.


엄마의 눈물 속 짠맛은 여전히 나를 향한 사랑의 농도로 남아 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그 ‘속이 짜다’라는 맛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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