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과제 - 장면을 감정으로 나타내기
도대체 얼마만인가?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길이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공항이 이렇게 컸던가' 피곤한 걸음을 느릿느릿 옮겼다. 순간 한국어로 떠드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가족으로 보이는 한국사람 몇 명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빛선은 잠깐 멈칫했다.
‘참, 여기는 한국이지?’ 순간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는 빛선은 씩 웃었다. 입국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간단하게 입국절차를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을 빠져나와 고향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매표소를 찾았다. 버스 정류장 옆에 회색빛 이동식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빛선은 표를 사려고 무거운 트렁크를 힘껏 끌어당겨 매표소로 다가갔다.
“Va rog! un bilet spre 대전, (대전 가는 표 한 장 주세요!)”
“네? 뭐라고요? 한국말 모르세요?”
순간 빛선은 움찔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돈을 내려고 지갑을 꺼내다가 동작을 멈춘 채 매표원을 쳐다보았다. 매표원이 빛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 네. 대전 가는 표 한 장 주세요!”
빛선은 얼굴이 빨개져 재빨리 한국어로 다시 말했다.
처음에는 어떤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한국에 올 때마다 꼭 한두 번은 이런 실수를 한다. 분명 한국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입에서는 루마니아어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 버린다. 재작년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버스를 타다가 운전사아저씨한테 루마니아어로 말을 해서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빛선은 루마니아에 처음 갔을 때, 언어가 익숙하지 않아 실수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몇 년을 살았다. 어느 정도 언어가 가능해질 때까지는 사람들을 만날 때나 관공서를 찾을 때면 늘 백배이상의 부담을 가득 품고 집을 나섰다. 버스표 한 장을 살 때도, 과일 하나 살 때도 늘 긴장을 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껏 한국어로 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깨를 쭉 펴고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걷던 빛선이었는데 실수 한 번에 다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구입한 버스표를 내고 고향으로 가는 공항리무진버스를 탔다. 리무진의 의자는 다리를 쭉 펴고 누워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비행기 좌석이 이렇게 넓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비행기에서 잠을 잘 못 잔 탓인지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창문사이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에 나른한 몸을 맡긴다. 졸음이 쏟아졌다. 집까지는 3시간은 더 가야 하니 한숨 자고 일어나도 괜찮을 듯했다. 빛선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는 사이에 버스는 대전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곧장 엄마가 계시는 친정집으로 향했다. 친정집은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새로 칠을 했는지 하얗고 깨끗해져 세월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큰길 건너편에 들어 선 신 시가지와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과거와 현재가 나누어진 듯 어색했다. 잘 생기고 키 큰 배우옆에 서 있는 키 작은 아이처럼
친정집 아파트는 왠지 낡고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빛선은 변하지 않은 친정집 동네의 익숙함이 오히려 반가웠다. 이곳에서만큼은 집에 돌아온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빛선이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 이 동네에 처음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버지는 시골에 있는 땅을 팔아 이 아파트를 어렵게 분양받았다. 너무 낡아
드나들기 창피했던 작은 맨션에서 몇 년을 살다가 이곳 아파트로 이사를 왔을 때, 엄마는 수시로 거실바닥을 걸레질하셨다. 거실과 주방사이에 레이스가 달린 하얀 커튼도 달았다. 새로 검은색 가죽소파까지 구입하셨다. 빛선은 그곳에서 대학교를 마쳤고, 직장을 다녔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곳은 마치 그녀를 예전의 모습으로 데려다주는 것 같았다.
이곳을 떠날 때 하고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과거의 흔적이 곳곳마다 새겨져 있는 이곳에 오면 마치 불편했던 여행에서 돌아온 듯 긴장이 풀어진다. 몇 년만인데도 왠지 지난주에 들렸던 것처럼 익숙하다. 빛선은 자주 가던 떡볶이집 부부가 여전히 길가에 떡볶이와 어묵국, 각종 튀김과 떡꼬치까지 내놓고 팔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엄마말로는 떡볶이 장사가 잘 돼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아이들 공부까지 잘 시켰다고 했다. 그 옆에 그녀가 자주 가던 빵집 또한 그대로였다. 좋아하는 팥빵과 크림빵을 먹을 생각에 침을 삼켰다. ‘참, 아직까지 밥을 못 먹었지?’ 슬슬 배가 고파졌다. 오랜 시간 굶주렸던 고향의 맛을 기억하자마자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빨리 들어가 엄마밥을 먹어야지.’ 발걸음을 재촉해 친정집 아파트 현관으로 걸어가는데, 아파트 마당 한가운데에 도넛을 튀겨 파는 하얀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이걸 어찌 참노. 이번 한국여행에서도 몇 킬로는 금방 찌겠구먼’
빛선은 씩 웃으며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섰다.
<5주 차 과제물>
과제 1. 다음 ‘Tell’ 문장을 ‘Show’ 문장으로 바꿔보세요.
-그는 피곤했다. : 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야간근무를 마치고 이제야 집에 들어왔다. 축 처진 어깨로 소파에 몸을 기댔다. 큰 하품을 하고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녀는 설렜다 : 그 남자를 만나기 5분 전이다. 벌써 도착했는지 저기 저만큼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한 남자가 보인다.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옆으로 가지런히 넘기고는 수줍은 듯 그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그녀의 얼굴이 복숭아처럼 발그레 익어갔다.
-그는 지루해했다 : 그는 큰 입을 벌려 하품을 하고는 곧장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불규칙하게 치기 시작했다. 남자의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사람은 말을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참을성은 이미 한계를 지나고 있는 듯했다. 결국 남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녀는 당황했다 :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는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무언가 변명을 하고 싶어 하는 듯 입을 오물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증거는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