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그녀들
애자 언니에게서 아일랜드 소인이 찍힌 편지가 도착했을 때, 유진은 한동안 봉투를 뜯지 못한 채 식탁 앞에 서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손 편지라니, 참으로 언니다웠다. 두툼한 종이에는 바닷바람이 스민 듯한 냄새가 배어 있었고, 안에는 언니가 사랑했던 바다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조심스럽게 동봉되어 있었다. 절벽 아래로 부서지는 파도와 해 질 녘 오후의 느지막이 바다를 비추는 은은한 빛, 그리고 수평선. 사진을 보는 순간, 유진의 마음은 애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작별 없이 떠난 것에 대한 원망이 뒤섞였다.
편지의 내용은 담담했다.
그녀의 아일랜드 행은 캐서린이 계획한 것이었다. 캐서린은 자수할 예정이었고 초콜릿 가게를 처분한 돈을 찾아 세연에게 주었다. 세연은 그 돈을 언니를 찾는데 큰 도움을 준 애자에게 주면서 예전부터 살고 싶어 했던 아일랜드로 가서 새 삶을 살아보라고 격려했다.
신유진 씨는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편지에는 캐서린에 대한 동정도, 비난도 없었다.
’ 세연은 언니 행세를 한 신유진을 용서한 걸까?’
편지를 읽는 동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영원히 묻힐뻔한 살인 사건을 밝히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용서가 가능한 것인지 궁금했다.
리처드는 공식 기록상 저지 아일랜드로 이주한 인물로 남아 있었고, 동시에 현상수배자 명단에 이름이 있었다. 그날의 진실은 유진 역시 알지 못했다. 다만 세연이 설명해 준 ‘언니가 발견된 경위’는 신유진 씨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다트무어의 어딘가를 더듬어 찾아간 이야기였다. 끝내 특정 장소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비슷비슷한 도로, 안개 낀 초원, 밤이면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황야로 뒤덮인 다트무어에서 그 밤의 장소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장대비에 언니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유진은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캐서린의 생일 밤, 그리고 그날 이후 사라진 리처드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에 근거하되,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 아마도 진실에 가장 가까운 소설이 될 거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리처드의 시신을 세연이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 묻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았다. 그날의 진실은 결국 네 명의 이주 여성에 의해 조용히 봉인되었다. 자신이 세연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세상에는 다른 진실들이 흘러나왔다. 리처드의 행적, 위조 서류, 행정 기록, 그리고 불법 도박 빚에 관한 내용들이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연일 특종으로 방송되었다. 뉴스 화면 속에서 그의 이름은 점점 범죄의 대명사가 되었고, 호감형 얼굴은 흐릿한 과거의 이미지로만 남았다. 유진은 그 보도를 보며 우리는 겉모습에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오후, BBC 한국 데스크 피디로 있는 수민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제 내가 밥 살 차례지?’
처음 뼛조각이 발견되었을 때 유진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수민의 섬세함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책 나오면 밥 먹자. 잘 부탁해.’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유진은 산책을 나섰다. 집 근처 골목을 돌던 중, 오래된 저택 앞에 세워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애플트리 하우스 급매’. 바람에 간판이 살짝 흔들리며 햇빛에 반사됐다. 그 집을 처음 보았던 날, 그리고 지난 6개월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들어 바다 쪽을 바라보자, 토키의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혹은 모든 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유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 뒤, 다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진실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었고, 누군가는 사라졌고 누군가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썼다. 유진은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이 누군가를 구원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잊히게 만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 부족한 첫 소설 끝까지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