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7년 차, 아직도 초보입니다
“런던에 사는 사람은 숨 쉬는 것도 돈을 낸다.”
런던에 살다 보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농담이다. 높은 세금과 교통비를 떠올리면 아주 과장만은 아니다. 다행히 우리 집은 런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숨 쉬는 건 무료'라며 웃는다.
직업이 세금을 계산하는 일이다 보니 한국과 영국을 살면서 자주 비교하게 되는 것이 역시 세금이다.
한국에서는 연말정산 시즌만 되면 사무실 불이 꺼질 줄 몰랐다. 부양가족, 교육비, 의료비, 신용카드 사용 내역까지 공제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제대로 내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었다. 빠진 서류라도 있으면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싸움으로 번질 수 있기에 재차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영국의 세금 제도는 단순하다. 연 소득 £12,570, 한화로 약 2,500만 원까지는 세금이 없다. 그래서 따로 공제할 것도 없다. 이후 소득 구간에 따라 세율이 올라간다. 교육비 공제는 없다. 사립학교 교육비에는 부가가치세까지 붙는다. '자녀를 공립학교로 보내라'는 정부의 메시지다.(2025년 1월 개정)
한국은 다르다. 가족이 있고, 아이가 있고, 병원비와 학원비가 있다면 세금은 줄어든다.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구조라면 세금 없는 구간을 서류 없이도 늘리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런 많은 공제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비해 실제로 세금을 적게 내는 쪽은 한국의 고소득자다.
영국은 소득이 올라갈수록 세금은 빠르게 늘어난다. 그래서인지 주변 영국인들은 일정 선을 넘기면 일을 줄인다. 급여 대신 휴가를 선택하고, 승진 대신 삶의 균형을 택한다. 세금을 더 내느니 자신의 시간을 갖겠다는 태도다.
나 역시 쉰을 넘기면서 계약서를 다시 썼다. 주 30시간 근무, 두 달 휴가. 수입은 줄었지만 삶은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그 여유가 생각보다 좋았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쓸 수 있고 말이다.
최저시급을 계산하다 보면 차이를 느낀다. 물가 수준을 제외하고 단순 시급 계산만이다. 물론 12월 한국 갔을 때 느낀 거지만 한국 물가도 만만치 않게 비싸다. 영국 최저시급은 시간당 £12.71(약 2만 2천 원, 2026년 4월 기준)이다. 주 40시간, 52주를 기준으로 하면 연봉은 약 4,500만 원이다. 말 그대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이 정도 소득이 가능하다. 영국의 사무직 초봉도 최저 시급으로 시작되니 직업은 '선택'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직업 선택은 ‘돈’보다는 ‘정체성’이나 ‘경력’ 쌓기에 목표를 둔다. 경력을 쌓으면 이직도 유리하고 고소득자로의 전환도 용이하기에 그런 관점에서 직업을 택한다.
나는 영국이건 한국이건 최저시급만으로도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나라를 여전히 꿈꿔본다.
일을 덜 하면 가난해지는 게 아니라, 삶이 조금 더 여유로워지는 나라.
이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비현실적이라고 고개를 젓겠지만 AI 시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취업 준비를 하는 나의 조카를 포함한 모든 취준생들에게 더 행복한 미래가 펼쳐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