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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 앤 칩스보다 떡볶이가 그리운 날

영국 17년 차, 아직도 초보입니다.

by 은주

‘그러니까… 7.50파운드에 2,700원을 곱하면, 2만 원이 넘는다고?’


대학원 시절, 메뉴판을 펼칠 때마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가장 저렴한 피시 앤 칩스가 7.5파운드였다. 지금도 그때의 고환율 정책을 떠올리면 경제부총리의 이름을 잊을 수가 없다. 등록금을 낼 때마다 욕을 한 바가지씩 했으니, 그분이 유학생에게 준 고통과 입 밖으로 나간 내 욕으로 서로 퉁치기로 했다.


당시 대학원 1년 등록금은 만 삼천 파운드로지금보다 싼 편이었고 3학기 과정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가을 학기에 시작해 봄을 지나 여름까지 이어지는 팀 과제의 연속이었다. 영어 발표는 한 문장씩 외우는 것이 최선이었고, 준비하지 않은 질문은 자연스럽게 영국 팀원에게 넘겼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와 자료 정리는 말이 서툰 나에게 돌아왔다. 팀별 과제는 모두가 예민해지는 지옥의 시스템이었다.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며 자료 준비를 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서로 지적질을 했고 예민해져서 다툼도 많았다. 팀을 바꿔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고도 팀 발표가 끝나면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사선을 함께 넘은 전우애까지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다시는 같은 팀으로 만나지 말자고 말하면서도, 어느새 다음 텀에 같은 팀을 하자고 약속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이상한 감정들이었다. 그런 감정들을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솥아내고 난 후 근처 펍 ‘웨더스푼’으로 갔다. 비싸지 않으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피시 앤 칩스 한 접시와 맥주 한 파인트로 책거리를 했다. 그때부터 피시 앤 칩스는 내 최애 영국 음식이 되었다.


영국에서 ‘chips’는 우리가 부르는 감자튀김이고, 한국에서 먹는 농심 포테이토칩은 ‘crisps (크리스프스)’이다. 그 차이를 몰랐던 신랑에게 “포테이토 칩 하나만 사와”라고 했다가 1kg짜리 냉동 프렌치프라이를 받아 든 적도 있다. 작은 냉동고 앞에서 둘이 실랑이를 벌이던 그날을 지금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한국 음식이 그리운 날엔 어떤 최애 음식도 소용이 없었다.
런던 한복판, 트라팔가 광장 근처에서 떡볶이 집을 발견하고 눈물이 났다. 엄마와 시장 입구에서 백원주고 먹었던 떡볶이, 학교 근처에 새로 생겼던 자장 떡볶이 집, 시험 끝난 후 친구들과 찾아간 신당동 골목. 떡볶이를 너무 좋아해서 떡볶이집 사장과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어린 나는, 결국 평생 떡볶이를 사주겠다는 사람과 결혼했다.


비가 오는 겨울밤이면 막걸리와 김치부침개가 떠오르고, 눈이 내리는 날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국물과 달콤한 팥 붕어빵이 그리워졌다.


다른 나라에서 오래 살아도 그곳이 완전히 내 나라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음식에 있다.
음식은 추억이고, 기억이며, 나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나를 ‘한국 사람’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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