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7년차, 아직도 초보입니다
조카가 1년 2개월 다닌 직장을 갑작스럽게 그만두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영국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취업이 된 곳이라, ‘원샷 원킬’이라고 뿌듯해하며 다니던 회사였다. 하지만 한 사람의 청춘이 이국땅에서 버티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현실은 짧은 자부심보다 무거웠으리라.
사정이야 많겠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는 결국 비자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타임라인이 선명하게 보이는 청춘에게 회사란 그가 가진 열정보다 ‘남은 비자 기간’을 먼저 보는 곳이었다. 특히 비자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매니저와 함께 일한다는 게 얼마나 곤욕스러웠을까?
조카의 고단했을 하루하루가 느껴졌다.
“잘하면 비자 지원해 줄 수도 있어”
필요할 땐 달콤한 희망을 흘리며 다가오고,
“이래서야 우리가 어찌 믿고 비자를 내주겠나?.”
실수라도 하면 인생의 중심을 흔드는 말을 쉽게 던졌을 것이다. 그렇게 가스라이팅 했을 것이다.
메니저 자신이 곧 회사라도 되는 양 희망 고문을 했겠지. 조카의 가슴에는 작은 금들이 조용히 늘어갔을 것이다. 지금은 워홀 비자가 있으니 당장 문제는 없겠지만, 9개월 뒤 다시 비자 고민을 해야 하는 현실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다 문득, 비자 지원이 절실했던 15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을 상사로 두고 일해야 했고,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이직의 문이 점점 좁아지는 시기였다. 새로운 길을 내기엔 늦어 보이고, 버티기에는 빠듯한 나이였다. 영국 경력을 쌓고 싶었지만 급여 차이가 컸고,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경력직 입사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비자를 지원해 주는 회사를 만났다.
어느 날, 팀장이 자신의 실수를 나에게 떠넘기려 하길래, 나는 당돌하게 말했다.
“승인은 제가 한 게 아니라 팀장님이 하신 건데요.”
팀장이 날카롭게 받아쳤다.
“송 과장님, 비자 지원 안 해주면 어쩌려고 말대꾸예요?”
순간 어이가 없고 모멸감이 밀려왔다.
“안 해주면 한국 가야죠. 제 나라가 망한 것도 아니고 갈 곳 없는 난민도 아닌데... 비자는 필요하지만 사정하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비자가 필요했지만, 회사가 나를 더 필요로 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비자는 나에게는 무기가 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팀장과의 관계는 그녀가 정리해고될 때까지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녀를 통해 어떤 상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만약 그 매니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도 그녀처럼 비자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내가 비자를 줄 수 있는 위치에 섰을 때, 젊은 직원이 거절당하지 않도록 서류를 꼼꼼히 준비해주곤 했다. 무엇보다 비자로 가스라이팅하지 않았다.
영국의 비자 법은 해마다 바뀐다. 예전에는 Skilled Worker 비자를 5년 이상 소지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도 비슷하리라. 15년 전에는 한국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비자를 내주는 회사도 많았다. 지금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매년 오천 명이 들어오니 그만큼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취업에 성공한 조카가 참 대견했다.
그런 직장을 그만둔 조카에게 “배가 불렀구나”라는 핀잔보다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이제 다른 챕터로 넘어갈 때구나”라고 그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이모가 되고 싶다.
면접을 보러 가는 조카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국가대표의 ‘버터플라이’ 후렴구를 메시지로 보냈다.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