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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영국에서 집사는 법

by 은주


17년 전 비 오는 엑시터 캠퍼스에서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달팽이의 등짐이 그때는 집으로 보였다. 비가 오면 달팽이도 숨을 집이 있는데, 그때의 나는 집이 없었다.


영국에 도착한 뒤 홈스테이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영국식 영어도 배우고, 문화도 느끼고 싶었지만 학업에 쫓겨 결국 넉 달 만에 기숙사로 들어갔다. 논문을 쓸 때는 여섯 명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의 방 한 칸을 구해 다시 짐을 옮겼다. 취업을 위해 런던에 두 달 머물렀다. 회사와 계약 후 이사한 슬라우가 일곱 번째 남의 집이었다.


1년 4개월 동안 여섯 번을 이사했다. 집이라는 건, 가격이 싸면 동네가 위험했고 안전해 보이는 동네는 비쌌다. 슬라우는 우범가로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회사가 가깝고 런던 나가기도 좋으면 괜찮은 지역이라고 생각했던 탓에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계약을 했다.


파키스탄 커뮤니티가 많아 집 상태에 비해 월세가 저렴했지만, 냉장고, 소파, 식탁, 테이블, 침대, 옷장까지 있는 원룸 같은 곳이 당시 600파운드였다. 런던에서 같은 상태의 집은 천 파운드가 넘었다. 하지만 해가 지면 혼자 다니기 무서운 곳이었다.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은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또다시 이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묘책으로 중고차 한 대를 샀다. 집은 못 사도 차를 사서, 런던을 나갈 때 차를 가지고 갔고 늦게 다녀도 무섭지 않았다. 술을 못 마시는 단점이 있지만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건 열 살 무렵에 터득했다.


셰어하우스는 미드 ‘프렌즈’에서 처음 보고 로망이 생겼었다. 한국과는 다른 거주의 형태. 비슷한 또래끼리 취미 생활도 같이하고 고민도 나누며 사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현실은 각자 생활이 바빠 서로의 일상에 관심이 없다. 월세를 모아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렇게 3년을, 당시 한 달에 200만~250만 원 정도 되는 월세를 내며 살았다. 돈이 쉽게 모일 리 없었다. 결국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초기 자금이 필요했다. 영국에서 집을 사려면 집값의 25%가 필요했고, 나머지 75%는 모기지*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그 무렵 영국 정부가 집 없는 사람을 위해 Help to Buy*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서 5%만 있어도 집 구입이 가능했다. 모아둔 돈을 탈탈 털고, 엄마의 도움도 조금 받고,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1.6%대 금리로 첫 집을 마련했다.


물론 화장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간이 낫웨스트 은행과 정부 소유였지만, 그럼에도 인생의 가장 큰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전세 없이 처음으로 방 세 칸짜리 집을 마련했다. 그때 엄마는 꿈꾸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집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래서 영어에서도 Home과 House를 구분해서 쓰는 것이다. 내 집 마련 전에 머물렀던 곳은 모두 House였고, 이제야 비로소 정신적인 안식처인 Home이 되었다. 그래서 부모님도 집을 그렇게 가지고 싶어 했나 보다.

내 이름으로 된 집 계약서를 손에 쥔 순간, 나는 진심으로 만세를 외쳤다.


런던에 집을 사겠다는 야무진 꿈은 예산 앞에서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괜찮다. 인생은 다 가질 수 없으니까.

집이라는 작은 공간 하나가 나를 지켜줬고, 그 안에서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



정부 지원(과거 Help to Buy)은 더 이상 지원하지 않습니다.

보통 소득의 4배까지 모기지가 나옵니다.

기타 궁금한 사항은 댓글 달아 주시면 성의껏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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