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7년 차, 아직도 초보입니다>
목요일 퇴근길. 집 앞 모퉁이를 돌자 너무 선명한 한국말로 ‘새우깡’이라 새겨진 봉투가 바람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영국인만 모여 사는 윈저 골목에 한국 과자 봉지라니. 누가 볼까 주차 후 얼른 뛰어가서 주머니에 주섬주섬 넣었다.
영국인 신랑은 한국 과자 중 초코파이와 새우깡을 좋아한다. 한 시간가량 떨어진 뉴몰든의 한국 마켓에 다녀오면 초코파이와 새우깡이 담겨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신랑이 먹고 아무렇게나 버린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신발을 벗을 틈도 없이 거실로 들어서며 다짜고짜 따졌다.
“새우깡 먹었어? 봉투 어디다 버렸어?"
"이 동네 나 혼자 한국인인 거 다 아는데, 이런 봉다리가 굴러다니면 사람들이 내가 막 버린 줄 안단 말이야!”
자초지종을 따지기 전에 성질부터 부렸다. 이안은 자다 날벼락 맞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단호하게 ‘노’라고 말했다. 지레짐작한 내게 서운했는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네가 사다 주지도 않은 새우깡을 내가 어디서 먹고 버렸다고 생각해?”
목요일은 우리 동네 쓰레기차가 들어오는 날이다. 쓰레기는 일일이 사람이 수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통을 버클에 끼우면 기계가 큰 쓰레기차로 올리는 작업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수거하는 날에는 사과 껍질이나 귤껍질 같은 것들이 도로에 굴러다니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새우깡 봉지라니.
영국인들은 겉으로 고상한 척하며 불평이나 평가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마 그들이 길가에 뒹구는 새우깡 봉지를 보면 겉으로는 아무 말하지 않겠지만 속으로는 욕할 것이다. 미국식 영어와 달리 그들이 구사하는 영어는, 그 말에 담기 속뜻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래서 처음에는 생글생글 웃기만 했던 적도 있다. 그리고 영국식 발음은 은근히 사람을 낮잡아 말하는 경우도 있다. 네가 있는 세계와 우리가 있는 세계는 다르다고.
“너, 영국에서 직업이 있어? 청소하는 일이겠지. 동양인들 대부분은 그러니까 말이야” 같은 말들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다. 다음에는 화가 났고 상대를 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 동네에 친구가 없었다. 그러다 그들도 조금씩 동양 사람들 중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을 구분해 내기 시작했다. 요즘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동네 단톡방에 올려주기도 한다. 가령 한국이 독일을 무찌른 월드컵 이야기나, 케이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봤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나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좋아지는 듯하여 뿌듯했다.
해외에 살면 가끔 내가 대한민국 대표라도 된 것처럼 행동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괜히 더 조심하고 더 민감해진다. 길 위에 굴러다니는 새우깡 봉지 하나에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스포츠 스타나 케이팝 아이돌처럼 국위를 선양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버스 안에서 자기 새우깡인 줄 알고, 새우깡을 먹고 있던 아저씨의 봉지에서 한 주먹 집어 들고 내렸는데, 집에 와 보니 뜯지 않은 새우깡 한 봉지가 가방에 있었다는 어느 여학생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이 동네에서 유난 떠는 한국인 여자 하나가, 그날은 누군가 버린 새우깡 봉지를 주머니에 숨긴 채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버린 사람이 보았다면 얼마나 웃겼을까?
나는 오늘도 아무도 임명하지 않은 한국 국가대표로 살고 있다
그나저나 이 봉지는 누가 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