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7년 차, 아직도 초보입니다>
영국에는 지역마다 ‘Executive Job Club’이 있다. 직역하면 고위급 인재 모임이지만, 일종의 직업 알선 모임이자 경력 네트워킹 클럽이다. 구직자 모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클럽을 알게 된 것은 8년 전이었다. 차장에서 팀장까지 8년 동안 일하던 회사를 그만둔 직후였다.
합병의 바람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속에서 나는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나만 남아 있었다. 팀원들은 모두 물갈이되었고, 전우애로 버티던 동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아침 6시, 출근 시간에 일어났지만 갈 곳이 없었다. 모기지와 관리비는 정확한 날짜에 어김없이 빠져나갔다. 통장 잔고는 줄어들었고, 새벽에 눈이 떠지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영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 동네 네트워크를 통해 구직자 모임을 알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 아침, 클럽에 들어서면 바삭한 크루아상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입구에서는 캔터키 프라이드치킨 할아버지를 닮은 마이크가 커피를 권했다. 백발이 잘 어울리는 그는 코카콜라에서 인사 담당자로 일했고 지금은 이 클럽의 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말을 할 때는 서두르지 않았고,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호감 가는 목소리였다.
첫 모임에서 평소 장군감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패기 넘치던 내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나는 잔뜩 긴장한 채 개미만 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클럽의 자원봉사자들은 대기업 임원이나 은퇴한 인사팀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면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예상질문들은 물론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영문 이력서를 수정해 주었고, 면접 연습도 시켜주었다. 나 같은 외국인에게 영어 면접 팁은 큰 도움이 되었다.
면접을 본 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누가 나를 다시 뽑아줄까?
나는 이미 한 번 퇴장한 사람 아닌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클럽에서 받은 응원 덕분에 한 주 한 주를 버틸 수 있었다.
누군가 취업에 성공해 사 오는 도넛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면접 성공 경험을 나누었다.
“포기하지 마세요. 기회는 갑자기 와요.”
웃으며 박수를 치기는 했지만 마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언제쯤 도넛을 사 올 수 있을까. 그렇게 4개월을 다녔다.
그곳에서 추천받은 회사가 지금 다니는 일본 회사였다.
첫 모의 면접 날의 첫 질문은 언제나 'Tell me about yourself.'이다.
남의 나라 말로 면접을 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당연한 질문인데도 침이 꼴깍 넘어가며 목이 말랐다.
나의 면접 전략은 첫 질문의 대답을 길게 하자였다. 거기에 일단 영어를 잘한다는 인식이 들어가면 약간의 막힘은 그냥 넘어간다. 중요한 문장은 시험 보듯이 달달 외웠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는 설명형 질문을 요청하자였다. 아는 척하다가 엉뚱한 대답을 하지 말자였다.
2차 면접 후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목요일, 나는 도넛 상자를 들고 클럽으로 갔다. 짧은 소감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저는 4개월 만에 클럽을 졸업합니다. 저는 4개월 동안 단 한 번의 면접 연락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떨어지는 것보다 더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떨어졌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어차피 한 번만 붙으면 됩니다.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살다 보면 가끔 인생의 고비가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좋은 사람이 나타났다. 아마도 캔터키 할아버지 마이크가 그해의 귀인이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