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 한국 여자
결혼하고 바로 다음 날, 남편은 은퇴를 선언했다.
연애 시절, 반년은 일하고, 나머지 반년은 한량처럼 지내던 그를 보고 엄마는 걱정하셨다.
“그 사람이 사업하게 돈 빌려달라고 하면 없다고 해.”
“없다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없어.” 나도 재정적으로 걱정은 되었지만 멀리 있는 엄마까지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웃으며 덧붙였다.
“이안은 사업할 배짱은 없어.”
그 말은 반은 맞고 받은 틀렸다. 그는 사업할 배짱은 없었지만, 은퇴할 배짱은 있었다.
결혼 후의 삶은 저녁을 같이 먹는 것만 빼면 싱글일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직장을 다녔고 각자 통장을 관리하였으며 각자 취미 생활을 했다. 함께하는 시간은 저녁에 TV를 보거나 주말에 야외에 나가는 시간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결혼하고 싶었던 걸까? 의문이 들었다.
“연애는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는 흔한 명제를 를 한 번쯤 시험해 보고 싶었다.
’ 1년만 진심으로 노력해 보자 정말 노력해도 안 되는 건지.‘
그렇게 시작된 도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성공해 버렸다.
그 후의 삶은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라는 고민 하나만 사라졌을 뿐, 그 외의 모든 고민이 두 배가 됐다. 결혼은 나눗셈이 아니라 덧셈이었다. 다행인 건지 뺄셈은 아니었다.
“난 파이어(FIRE)족이야.”
(Financially Independent, Retired Early)
“넌 딩크족이라며. 하나만 해! 딩크족이든 파이어족이든.”
“아냐, 딩크족을 포기하면 20년 동안 파이어도 못 해.”
파이어족의 제1장 1절은 이렇다.
“부양할 가족이 없어야 한다.”
1장 2절은 더 명확하다.
“모기지나 은행 빚이 없어야 한다.”
이 두 가지에 해당되는 이안은 일찌감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회계사를 그만두었다. 은퇴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돈 때문에 할 필요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안의 유튜브 채널 1화는 바로 이 두 절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파이어족으로 사는 삶에 규율을 만들고, 그 규율을 콘텐츠로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는 은퇴 재정을 주제로 한 유튜브 영상을 촬영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전문적인 은퇴 전도사였지만, 촬영을 마치고 나면 게임에 빠진 아이처럼 우표 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일하는 그녀보다 더 바쁜 '취미 부자'였다.
그가 경매에 갔다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었다.
'뭐 고가구나 그림을 낙찰받아 오려나' 하는 단순한 생각을 했었다.
그가 들고 집 안으로 들어온 건 우표가 가득 든 12개의 상자였다. 신발도 안 벗고 취미 생활 방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쓸고 닦아 놓은 마룻바닥에 흙을 끌고 들어왔다.
‘신발을 벗고 실내화 신으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건지’ 문화의 차이는 신발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그의 반짝이는 눈빛에 잔소리하려던 걸 한 번 참았다.
뉴질랜드와 호주의 오래된 우표들을 신줏단지처럼 들고 왔다. 젊은 빅토리아 여왕에서 젊은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이어지는 시대의 흔적들이 우표 집들에 집결되어 있었다. 하나에 수천 파운드를 호가하는 우표들도 있었다. 경매의 무용담을 신이 나서 떠든다. 과묵한 그가 가장 수다스러운 순간이다.
그 후 며칠 동안 취미 생활 방은 우표로 가득 널려 있었다. 언제쯤 정리를 다 할지 못마땅한 눈으로 그것들을 쳐다봤다. 정리도 못하면서 12박스나 끌고 들어온 그는 눈치도 없다. 하나하나 보호 필름을 씌우고, 연도별로, 모양별로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사 분담을 또 다른 골칫거리였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그가 가사를 많이 할 거라 생각했지만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안 이지러 놓으면 다행이다.
그는 빨래는 자기 것만 빨아 널고, 자기 방만 청소하는 이기적인 파이어족이었다.
"어떻게 네 것만 해?"
“네가 요청 안 했잖아.”
부부 사이에 요청은 무슨 요청. 공문이라도 보내야 하나?
“세탁기 돌릴 때 같이 돌리고 빨래가 되면 같이 널어놓는 건 그냥 상식이잖아. 어떻게 내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까지 세탁기 안에 그냥 둘 수가 있어?” 퇴근 후 다 돌아간 빨래를 세탁기 안에서 발견하고 어이가 없었다. 빨래의 구김과 쉰내에 짜증이 났다.
“나의 상식은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거야.”
"우리가 남이야?" 결국 나는 폭발했고 그는 "미안해"로 마무리되었다.
차후에 좀 더 이성적인 방법으로 화내고 폭발하는 대신 자주 8인용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했다.
그녀는 그걸 ‘협상 테이블’이라 불렀고, 그는 그것을 ‘노티 체어(Naughty Chair)’라 불렀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반성하라고 앉히는 그 의자에 그는 혼나는 아이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둘이 마주 앉아 서로의 ‘상식’‘생각’‘방식’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국제결혼은 ‘나의 한국’와 ‘그의 영국’이 부딪히고 타협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