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 한국 여자
그는 표현이 서툴다. 해외 출장과 여행이 잦은 나를 위해 공항에 꽃을 들고 기다리거나, 내가 좋아하는 한국 꽈배기처럼 보이는 시시도넛츠를 사 들고 오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고백의 순간에도 ‘은주 곰’이라는 동화를 지어내어 표현했다.
은주 곰은 모험심이 강한 곰이었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티셔츠 몇 장과 청바지 네 벌만 챙겨 떠난 대담한 베어. 낯선 땅에서 여러 계절을 보내며 그녀는 공부도 하고 직장도 다녔다. 터키, 아이슬란드, 유럽을 여행하던 중 ‘이안 곰’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혼자였던 은주 곰의 긴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마흔이 넘으면 용기가 사라지는 건지, 변화가 쉽지 않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삶 속에 그가 들어오는 공간은 낯설었지만 따뜻했다. 유치하지만 동화 속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데이트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음식이었다. 이안은 한국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그는 토마토와 새우가 들어간 파스타를 좋아했고, 나는 파가 송송 들어간 매콤한 라면을 좋아했다. 나의 최애 음식은 떡볶이였는데, 그는 그것을 “빨간 고무를 씹는 것 같다”며 평가 절하했다. 노티 체어에 마주 앉아 대책 회의를 열었다. 일주일 7일 중 아침과 점심은 각자 해결하기로 하고, 저녁은 같은 식탁에 앉아 3일씩 나누어 요리하기로 했다. 하루는 외식이다. 같은 식탁에서 다른 음식을 먹는 부부도 많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의 식사 시간은 임금님 수라상이라도 즐겁지 않다. 치즈의 꼬릿 한 냄새를 싫어하는 나와 김치의 마늘 향을 싫어하는 그.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을까? 이게 헤어짐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음식이 나오든 맛있게 먹어야 했다. ‘서로의 음식을 존중하자’라는 표어가 하우스 룰이 되었다. 그가 만드는 음식은 주로 새우 파스타, 인도 카레, 피자, 그리고 슈퍼에서 사 온 밀키트였다. 반면 내가 만드는 요리는 비빔밥, 김치볶음밥, 짜장라면, 떡갈비처럼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었다. 서로의 음식에 숟가락을 얹어보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면 ‘한국인의 맛을 보여주리라’는 다짐 아래 칼질은 더욱 바빠졌다. 다진 쇠고기와 양파, 당근을 볶아 색을 냈다. 초록색 시금치와 흰색, 노란색 고명이 어우러진 소고기 비빔밥을 본 이안은 박수를 쳤다. 비빔밥의 고운 자태에 “뷰티풀”을 외친다. 매운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한 숟가락 크게 입에 넣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며 연신 “맛있어요”를 외쳤다. 매년 추석이면 외국인 친구들이나 동료를 집으로 초대해서 떡갈비와 소고기 비빔밥을 대접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대한민국 홍보대사처럼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한 숟가락 크게 입에 넣으며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동료들은 시험이라도 보는 양 그대로 따라 했다. 매년 추석이면 외국인 친구들이나 영국인, 일본인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떡갈비와 소고기 비빔밥을 대접했다. 김치를 처음 먹어본다는 동료도 있었다.
그렇게 은주 곰은 메인 셰프가 되었다. 3일은 그가, 3일은 그녀가 요리하기로 한 약속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의 끝없는 칭찬과 박수 속에서 그녀는 요리하는 곰이 되었다. 이제는 한식부터 양식까지 못하는 음식이 없다. 생일이면 영국에서 팔지 않는 한국식 딸기와 블루베리로 장식한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고, 추석이면 잡채, 전, 비빔밥, 떡갈비로 동네잔치를 벌인다. 크리스마스면 덩어리 소고기를 올리브오일과 허브로 시즈닝해 감자, 당근과 함께 오븐에 구운 로스트비프를 만든다. 음식은 한식뿐 아니라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다람쥐 쳇바퀴 같던 단조로운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저글링까지 추가된 무한 반복의 삶으로 바뀌었다. 1배속에서 2배속으로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식탁에 마주 앉아 영혼을 나누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