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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Apr 03. 2024

1월의 밑줄(1/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1월 08일 월요일


항상 바쁘면서도, 앞으로 더 바빠질 구실을 궁리한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긴장감이 사라진 텅 빈 공간이 그들을 쓰러뜨려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_ 토니 모리슨, <재즈>, 32-33p


문장을 읽다가 바쁨에 대해 생각했어요. 안 바쁘면 역시나 불안합니다. 최근에는 어라? 안 불안했는데, 5개월 아기와 사는 일상이 무척 바빠서 인가 봅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쁜 것에 속고 있었어요. 5개월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네요. 불안도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는 것을 또 깨달아요. 이번 달에는 바쁘지 않은 시간을 만들어 좀 더 명확한 생각을 하고 싶어요. 바쁨의 게으름을 끝내고 싶어요.


01월 09일 화요일


여름 아침, 그 평온함, 내가 서 있는 풀밭은 떨림조차 거의 없지만 위대한 일이 행해지고 있다는 느낌. 아주 평범한 순간이었고 흔히 말하는 신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_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62-63면


내 일상이 이렇다. 아주 평범하다. 신비와 놀라움은 물론 없고, 떨림조차 없다. 예전 같으면 지루함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일이 행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기가 태어나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거대한 자연을 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01월 10일 수요일


애틋하고 조심스럽게, 예민하고 다정하게 바라봅니다. 느끼고 파악하기의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마치 갓난아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죠.

_ 박정민, 뉴스레터 <우리는 시를 사랑해> 중에서


시인의 시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어요. 제가 시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이유를 몰랐다가 박정민 님의 편지를 받고 깨닫게 됩니다. 시선이었어요. 단어나 표현에 매료되는 줄만 알았는데 말이죠.


01월 11일 목요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거리에서 사람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는 게 제일 좋다.

_ 토니 모리슨, <재즈>, 117p


카페에 갔다가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듣게 되는 일이 있죠. 글을 써보겠다고 어제 스벅에 갔다가 내 글에는 집중을 전혀 못 하고 옆 테이블 이야기만 듣고 왔어요.


그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어요. ‘세상에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맙소사 저런 걸 입 밖으로 뱉을 수 있구나.’, ‘저런 생각 근처에 살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다.’ 빨리 남편과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세상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낀 어제였어요.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가끔 이런 시간 있어도 좋겠다 싶네요. 거리에, 카페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 해볼까 봐요. 어제의 그 남녀의 대화가 아직도 생각나고 그들의 속마음 같은 것도 생각해 보게 돼요. 단편 소설을 읽은 것 같달까요.


01월 12일 금요일


희귀하고 경이로운 인식은 그런 분주한 시간에는 찾아오지 않는 듯하다.

_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63p


생각하는 것이 게을러졌어요. 요즘 가장 반성하는 부분입니다. 빠르고 짧은 사고만 하고 있어요. 길게 깊게 생각하는 내가 점점 소멸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보니 - 어쩌면 분주한 일상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몇 시간이라도 나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고, 아니 휴식을 주자고 마음을 한번 먹어 봅니다.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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