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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Apr 05. 2024

2월의 밑줄(2/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2월 12일 월요일


모든 것은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예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된다.

_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33쪽


예전에 친구가 그랬어요. 변수가 상수라고. 그 말이 참, 참말이다 싶으면서도 실감을 못하고 살아요. 지금의 모든 것들이 계속될 것만 같아요. 정말 모든 것들이요. 내년 설에도 조카는 6살일 것 같고, 딸은 그때도 이유식을 먹고 있을 것만 같고,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무용하다고 느낄 것 같고.


하지만, 내년 설에는 조카는 학교에 입학한다고 새 책가방을 가지게 될 것이고, 딸은 그때는 갈비도 뜯겠다고 하겠죠. 부디 저도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되어있기를 바랍니다.



02월 13일 화요일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 너무 많아.

_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73페이지


저도 이런 기회를 자주 놓쳐요. 돌아서서 후회할 때가 이렇게 많으면 안 되는데요. 특히 가족들과 그렇습니다. 2월인데 벌써 후회의 리스트가 너무 길어요. 올해는 그만 늘리고 싶습니다.


특히 저는 판단의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특히 자주 하는데요. 무슨 재판관이라도 되는양 따져댑니다. 말투도 사나운 편이라 저 정말 주의해야 해요. 후회에 깔려 버둥거리기 전에요.



02월 14일 수요일


느긋하고 근심 없고 충족된 표정으로 잘 웃었다. 수양이나 투쟁으로 얻은 것이 아닌 천성적인 자유로움이 보기에 참 좋았다.

_ 박완서, <모독>, 82쪽


작가가 유일하게 남긴 여행 에세이에요. 티베트와 네팔에 다녀와서 쓰신 것인데 박완서+네팔 조합이라니 제 맞춤 책이라 한 줄 한 줄 얼마나 달게 읽었나 몰라요. 19년 4월 네팔에 갔을 때 그곳 분들을 보고 제가 느꼈던 것을 박완서 샘은 이렇게 문장으로 표현하실 수 있으시구나, 내가 느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감탄에 턱이 절로 떨어집니다.


+ 지금 박완서 샘 중독 상태입니다. 매일 박완서 님 글을 읽지 않으면 손이 떨릴 듯 중독 증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02월 15일 목요일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항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_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24-25p


출산 직전에 기분이 참 이상했어요. 즐거운 것 같은데 두려운 그 느낌을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모험가의 기분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죠. 도착한 신대륙은 상상이상입니다. 상상 이상으로 졸리고, 집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가도, 나가면 전속력으로 집에 오고 싶고, 아기를 보면 꼬옥 껴안아 주고 싶다가도, 모유수유하다가 이제 이가 난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리면 아기를 던지고 도망가고 싶습니다. 아직 6개월밖에 엄마 노릇을 하지 않았는데도 희로애락의 스펙트럼이 두 배쯤 넓어진 기분입니다.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기분이 드나 봅니다. 이런 저에게도 새로운 말이 필요하겠네요.


02월 16일 금요일


우리 집의 처지와 자기들을 비교함으로써 그의 행복은 완벽한 것 같았다. 남의 불행을 고명으로 해야 더욱더 고소하고, 맛난 자기의 행복...

_ 박완서, <나목>, 183쪽


큰집에 갈 때마다 새 옷을 입었다. 학생인 시절 내내 쪼들리는 형편이어서 수학여행 갈 때도 헌 옷을 입었는데 왜 자주 보지도 않는 친척들을 만날 때는 부잣집 애들이 입는 원피스를 사주는지 그때는 몰랐다.


김제평야를 따라 버스를 타고 가다 만경강이 보이면 그때부터 마음을 다르게 먹었다. 똘똘한 애처럼 보이려고 눈에 힘주는 연습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엄마 눈치를 보고 절로 그랬다. 이 문장을 읽으니 그때 생각이 난다. 고명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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