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후나 Apr 04. 2024

2월의 밑줄(1/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2월 05일 월요일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해요. 저는 자신을 본질적으로 명랑한 사람이라고 여겨요. 그리고 늙어서도 그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_ 박완서, <박완서의 말>, 644쪽


어떻게 늙고 싶으세요?


이제는 100세 시대를 넘어 140세 시대가 온다고 하더군요. 70세까지 살아도 또 70년이 있는 인생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물론 언제 죽을지 모를 인생입니다만, 어떻게 늙고 싶은지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엄숙하고 뻣뻣한 사람이 돼버릴 것 같아요. 저도 박완서 님의 말처럼 명랑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르겠네요. 일단 오늘을 명랑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43살에 엄마가 된 저의 올해 키워드가 ‘나이 먹는 것’이라 - 이 책 마지막 챕터의 인터뷰를 무척 인상 깊게 읽었어요. 박완서(당시 67세) + 피천득(당시 미수/88세) 두 분의 98년 인터뷰예요. 두 분의 대화가 얼마나 가식 한 점 없이 아름다운지 몰라요. 나이 먹는 것에 대해서 가닥이 안 설 때마다 펴보게 될 것 같아요.



02월 06일 화요일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강박은 버렸는데 건강해 보이고 싶은 강박은 버리지 못한 것은 아라의 한계일지도 몰랐다.

_ 정세랑, 단편소설 <아라의 우산> 중, 소설집 <아라의 소설>, 316쪽


외모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어요. 30대 후반부터 그랬나 봐요. 이제는 남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나도 많이 컸다. 이렇게 생각했단 말이죠. 역시 교만했어요. 이 문장을 보다가 나도 아라처럼 저도 건강해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어요. 나도 몰랐던 내 욕구의 맨살을 봐 버렸습니다. 이것도 제 한계겠지요.



02월 07일 수요일


언젠가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를 1년에 모두 직관하고 싶다.

_ 배기홍, 스타트업바이블 뉴스레터 2024-02-01자 중


누군가의 소원을 들었을 때, 나도! 이렇게 외치게 되는 경우가 있죠. 뉴스레터를 읽다가 그랬습니다. 생각만 해도 발꿈치까지 전기가 통한 것 처럼 짜릿짜릿해요. 1월에는 호주(멜버른)로, 5/6월에는 프랑스(롤랑가로스)에서 또 바로 영국(윔블던), 8/9월에 미국(뉴욕)에 가서 테니스 경기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이걸 쓰면서도 턱이 떨어져서 손으로 닫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도대체 내가 테니스(경기를 보는 행위)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 삶에서 절대 꼭 지켜 마이 프레셔스가 잠인데, 그 귀한 것을 휙 내팽개치고 티브이 앞에서 눈 씨벌게 져서 보게 되는 이 매력은 어디서 온 것인가? 몇 년째 답할 수 없는 이 어려운 질문에 해답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라도 이 꿈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꼭.


그러나 6개월 된 아기가 저에게 눈으로 말하네요. 엄마 꿈 깨.



02월 08일 목요일


나대자

_ 김하나, 황선우의 <여둘톡> 2024년 1월 1일 방송 분


몇 년간 기를 못 펴고 살았다고 할까요? 그 기를 누른 것은 당연히 저 자신이고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1교시부터 1번으로 발표를 하는 어린이였습니다. 제가. 원체 잘 나대는 성격인데, 약 2019년부터, 그러니까 40대를 앞두고부터 변했어요. 스스로 이런 말을 자주 했어요. 신중해, 그러다 망한다, 나잇값을 해야지, 워워.


며칠 전, 혼자 아기를 보다가 지루해져서 오랜만에 여둘톡을 들었습니다. 팟캐스트 제목을 보고 천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어요. <나대라!> 최근 몇 년간 왜 이렇게 목에 은행 같은 게 걸린 것 같지, 가슴을 치고 싶은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걸 이 제목을 보고 알게 되었어요. 원래 내 모습처럼 살지 않고 내 마음에 전족을 신겨 놓은 것처럼 살고 있어서요.


슬슬 나대고 살아 볼래요. 4-5년간 너무 극단으로 나대지 않아서 시동이 걸리려면 시간 좀 걸리겠지만, 내 원래 모습을 다시 찾고 싶어요. 나대는 나.



02월 09일 금요일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철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_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120쪽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이란 표현을 읽고 아빠를 생각했어요. 아빠의 표현은 하는 것보다 하지 않은 것으로 이루어지 거든요. 저처럼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으로 하는 표현은 알아채기 어려워요. 아빠를 알고 지낸 지 40년이 넘어 겨우 그 표현을 읽어내요. 이번 설에 처음으로 6개월 된 딸과 친정에 가서 잤어요. 가족들은 모두 근처 카페에 간식을 먹으러 가는데 아빠는 안 가시더라고요. 그냥 그런가 싶었죠. 저는 작은 방에 이불을 얇게 깔고 (아기가 혹시 뒤집었다가 숨 막힐까 봐) 자고 있는데, 아빠가 몇 시간에 한 번씩 와서 잘 자고 있나 보시더라고요. 말없이 가습기를 가져다주시기도 하고요. 친절의 반대말이 아빠인 저에게는, 자다가 그런 아빠의 기척을 느끼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까지 아빠가 말이나 행동으로 하지 않은 친절은 뭐가 있었을까를 생각하다가 아기 손을 잡고 잠들었네요.


+


이 책 띠지 뒤편에 이렇게 써있어요. "한 세대에 한 명씩만 나오는 작가 클레어 키건의 대표작". 100페이지 조금 넘는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이런 극찬을 받을 만한 것 같아요. 저는 문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쥐뿔도 개뿔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잊고 살던 제 어릴 적 이야기들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것도 소설이랑은 상관도 없는 이야기들이에요. 그렇다면 정말 한 세대에 한 명씩밖에 나오지 않는 작가가 아닐까, 싶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1월의 밑줄(3/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