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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Apr 06. 2024

2월의 밑줄(3/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2월 19일 월요일


싫은 게 나인지 나 외의 남인지 어쩌면 그 모든 것인지 난 아무튼 나를 포함한 주위의 너절한 풍경을 종이 조각 꾸기듯 마구마구 구겨 던져버리고 싶었다.

_ 박완서, <나목>, 136쪽


돌아보니 20대 내내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겨우 하루를 버티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나도 내 주위도 다 엉망인 것 같았어요. 이 문장을 보니 그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는 뭐가 그렇게 심각했나 몰라요. 왜 맨날 울면서 잠들었나.


02월 20일 화요일


가까스로 사람에 불과한 내가, 글을 쓸 수록 강렬하게 인지합니다. 한 번뿐인 삶, 다시없을 오늘.

_ 최진영, <단 한 사람>, 254-255 작가의 말 중


이 책 때문에 아직 못 자고 있어요. 소설을 저녁에 읽으면 안 됩니다. 이야기가 제 손목을 잡고 놓칠 않았어요. 다 읽고 났더니 잠은 다 달아났습니다. 7시에 수영 가려면 자야하는데 어쩌죠? 그래도 한 번뿐인 삶, 다시없을 오늘. 이 책을 읽는 내내 강렬한 경험을 했습니다. 내일은 졸리겠지만 이 밤은 만족스럽습니다.


02월 21일 수요일


눈빛은 육체인가?

_ 최진영, <단 한 사람>, 214쪽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사고를 버리고 싶어요. 좋다-나쁘다, 내 편-네 편, 안-밖 이렇게 유치하게 생각하는 것이요. 대충 생각하고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 나태한 자의 사고방식이겠죠. 그런 저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눈빛은 육체인가?


02월 22일 목요일


”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게 마련 아녜요. 우리도 최소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 게 아녜요?“ (...)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_ 박완서, <나목>, 341-342쪽


한국 전쟁이 발발하던 해 20살이 되는 건 비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때도 연애도 하고 설빔도 입고 만두도 빚어 가족들과 나눠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 줘서 꼭 우리 할머니가 겪은 일을 아랫목에 앉아 듣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외할머니는 31년 생으로 박완서 작가님과 동갑이다. 그래서인지 더 우리 할머니가 직접 겪은 일 같았다.


02월 23일 금요일


금화 언니는 진실을 말했다. 여기 없는 사람이 나를 도울 수는 없다. 그러나 지켜줄 수 있다.

_ 최진영, <단 한 사람>, 215쪽


이 문장을 읽다가 내가 부모님, 조부모님에게 물려 받은 정신적 자산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여기 안 계시지만, 저를 지켜주고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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