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3월 04일 월요일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펼쳐보았다. 사실상 모든 시에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_ 김소연, <시옷의 세계>, 175쪽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목련의 이중 코트를 확인한 순간. 목련 꽃을 감싸는 털 코트가 한 겹인줄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두 겹이었다. 여러 꽃들이 이미 한 겹을 벗고 있는 중이었다. 3월인데 두꺼운 겨울 코트까지 입고 있는 건 아무래도 눈치 보이지.. 긁적긁적하며 벗은 걸까. 하지만 꽃샘추위를 조심해야 하는 걸 잘 알고 있는지 안에 껴입은 코트는 아직 단단히 여미고 있었다. 목련 나무 야무지네.
이 순간을 떠올리니 아무 기념할 거리가 없는 하루가 시가 되는 것 같다. 순전히 반복만 반복하는 내 하루에도 가끔은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여 봐야지.
03월 05일 화요일
시도의 에너지는 정지의 안정성보다 위대하다.
_ 메리올리버, 시 <가자미, 아홉> 중, <완벽한 날들>. 134쪽
물 마시다가, 빨래통에 수건을 넣다가, 수영복을 갈아입다가 며칠 전에 읽은 이 문장이 튀어나왔다. 왜 이렇게 자꾸 날 따라다니는 거야? 성가시게.
이유식 준비 말고는 시도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 내게 필요한 말일까? 그래서 자꾸 떠오를까? 일종의 경고일까? 너 이렇게 살면 안 돼. 정지의 안정성도 달콤하다만, 그러다 시도의 에너지를 쓰는 법을 까먹을지도 몰라, 하는?
03월 06일 수요일
그러니까 인간에게만 문학이 있는 거 아니에요? 다른 동물에게는 이중성, 삼중성이 없으니까.
_ 박완서, <박완서의 말>, 334쪽
보고 싶은데 - 떨어지고 싶고, 가고 싶은데 - 가기 싫고, 읽고 싶은데 - 지금 말고. 이런 이중성, 삼중성 - 저만 매일 느끼나요?
저, 사실 꿈을 이룬 것이죠. 4년간(어쩌면 평생) 기다린 아기를 만난 거니까요. 태어나기만 하면 세상에 제일 좋은 것만 줘야지 마음속 깊이 다짐했어요. 아기가 태어난 지 막 200일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은 전연 변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가끔 아기가 없던 조용한 집이 생각납니다. 남편이랑 도란도란 밥을 지어먹고 맥주 한 잔 하러 밤마실 가던 그날들도요. 그리워요. 아, 아닙니다. 안 그립습니다. 그때 시험관 하면서 세상의 모든 근심이 내 등허리에 붙어 있는 것 같았거든요. 아 그리운 것 같기도 합니다. 아 아닙니다. 아 내 이중성, 삼중성 어쩌면 좋습니까?
03월 07일 목요일
다섯 아이를 다 젖 먹여 기를 때, 어린 것을 가슴에 안고 내 몸 안에서 가장 좋은 것 뿐 아니라, 내 심성 속에서 가장 좋은 것 만이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어지길 비는 마음은 거의 접신의 경지였다.
_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188쪽
젖물잠(젖을 물어야 잠이 드는 아기의 수면습관) 때문에 고민입니다.
태어난 지 206일이 된 딸은 이제 더 이상 마냥 작은 아기가 아닙니다. 소고기, 청경채, 브로콜리, 배추, 당근, 적채 이런 것들도 먹고요. 맨질맨질했던 분홍색 잇몸레 하얀 이도 두 개 올라왔으니까요. 이렇게 마음도 몸도 자라고 있는데, 마냥 아기 취급 하면 안 되죠. 그래서 3월 1일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혼자 잠드는 것도 연습해 보자. 사람은 낮에는 같이 지내고, 밤에는 혼자 자는 거니까.
첫날에는 20분, 둘째 날은 15분, 셋째, 넷째 날은 3분씩 울다가 혼자 잠들었어요. 와 역시, 너 자라고 있구나. 감격했어요. 그러다 어제 망했습니다. 엄마 나 이제 엄마가 뭐하는지 알았거든, 근데 나는 그게 영 맘에 들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우는데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제 양 팔로 벌써 아기를 안고 달래주고 있었어요. 이제 아기는 배웠습니다. 온몸을 써서 울면 엄마가 온다는 것을요. 이제는 놀다가 수평자세가 될 것 같으면 그때부터 울어요. 불안이 학습된 것 같아서 미안하고 걱정스럽습니다.
문제는 젖(오른쪽)을 물어야 잠을 잘 수 있는 것인데요. 어제도 물린 채로 거의 한 시간을 붙들려 있었습니다. 붙들린 채로 밀리의 서재 앱을 켜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 문장을 보며 그래. 나도 너에게 내 속에서 가장 좋은 것만 너에게 아낌없이 주어지길 비는 마음이 있지. 그런데 내 심성 속에서 가장 좋은 것 중에는 독립심도 있단다. 우리 그것도 배워보자, 하며 몸을 돌렸다가, 다시 물려서 한 시간이 연장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합니다.
03월 08일 금요일
동시대 미술가들은 관찰, 지각, 소통의 대가들이다. 어떤 미술가들은 보통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는 대상에서 유의미한 메시지와 주장을 끌어내고 시각화하여 다른 사람들까지 그것을 볼 수 있게 만든다. 말 그대로 우리를 ‘눈뜨게’ 한다.
_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 42쪽
현대 미술관에서 느끼는 그 강렬함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다녀오면 책을 10권 이상 읽은 듯 적을 것이 많았고, 메시지들마다의 인상도 깊어 오래 생각하곤 했거든요. 최혜진 작가님의 이 문장을 보고 비로소 알게 되네요. 유의미한 메시지를 볼 수 있게 눈뜨게 해 준 거네요. 요즘 생각의 재료 수집을 책으로만 하고 있어서 나태하다고 머리를 쥐어 박고 있었는데요. ’눈뜨러‘ 더 성실하게 미술관에 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