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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Apr 08. 2024

3월의 밑줄(2/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3월 11일 월요일


뭔가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지독한 짠순이인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장면이 너무 아까워서, 어떻게든 가지거나 복원하려고 애쓰는 짠순이라고.

_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244쪽


문장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글로 써 놓으면 어떻게든 그 장면/생각/순간을 비로소 ’가지는‘ 느낌이 나는데, 그래서 쓰고 싶은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03월 12일 화요일


누구나 남을 자기로 밖에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 조금 슬펐던가.

_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183쪽


작가가 알몸을 파는 상인(누드모델)이 되어 느낀 바라고 합니다. 작가의 알몸을 그린 그림을 보고서요. 누구나 남을 자기로 밖에 통과키기지 못한다는 점 - 무척 공감하는데, 조금이라도 그 경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원래 그런 거니까 어느 정도는 체념해야 하는 걸까요?


03월 13일 수요일


행복한 말, 넘버원

‘맛있다’

_ 마스다 미리,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138p


1.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기록하고 있다. 뭐 거창할 건 없고 달력에 그날 가장 큰 기쁨을 준 것을 적는 거다. 꽤 자주 음식 이름을 적었다. 2월만 해도 짜조, 오렌지주스, 커스터드 빵, 아이스라테가 있었고, 3월도 벌써 굽네치킨, 청와옥 순대국이 등장했다.


2. 남편이 함께 일했던 분이 3년 전 여러 차례 뇌수술을 받았다. 유난히 돈가스+맥주를 좋아하시는 분인데, 첫 수술이 끝나고 의사에게 앞으로 고체 음식은 먹을 수 없을 겁니다 란 말을 들었다. 먹는 낙이 그렇게 큰 사람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다행히 재활훈련도 열심히 하고 운도 따라 주어 지금은 돈가스를 마음껏 드실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이 예전 같지 않고 다 맛있다고 했다. 맛있다는 말을 이 세상 사람 모두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전에는 모르고 살았다. 나의 이 작디작은 옹졸한 세계라니.


3. 오늘은 남편 생일이다. 그가 행복한 말 넘버원 맛있다를 자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03월 14일 목요일


그가 수락하는 일들은 다섯 가지의 주요 동기 중에서 최고 두 가지를 충족하는 일이다. 돈, 재미, 의미, 의무, 아름다움.

_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88쪽


1. 이 문장을 보면서 나는 어떤 동기에 큰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2. 이슬아 작가와는 다르게 이제까지 저의 주요 동기는 - 1) 돈, 2)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3) 나에게 효능감을 주는가, 4) 의무, 5) 부모가(특히 부가) 자랑스러워 할만한가 - 였는데요. 엄마가 되고 나서 5)에서 많이 극복했습니다. 그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다시 한번 주요 동기를 재정립해야 할 시기요.


03월 15일 금요일


사람이 저마다 설명될 수 있는 부분으로만 돼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각박할까 싶기도 했다.

_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357쪽


연재 하고 있는 브런치북의 목차 18개 중 16개를 썼습니다. 난임 기간부터 출산하기까지 4년의 이야기예요. 희희님이 <첫 책 만드는 법> 북토크에서 해주신 말이 큰 계기가 되었어요. 책을 쓴다는 것은 한 시기를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요. 제가 책을 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정리하는 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먼저 연재를 시작한 소하님이 손 잡아 주시면서 같이 산책하는 기분으로 한 편씩 올렸어요.


쓸 말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16개나 썼네요. 그럼에도 거기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요. 그런 것도 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건 또 아니구나 했습니다. 다 설명할 수 없는 게 인생이겠죠. #역시박완서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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