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과 올가 토카르추크를 읽으며 한 주를 보냈다.
10월 13일 월요일 기록
삶의 목적과 의미를 '목격'에 두고 산지 꽤 되었다. 태어나 보고 듣고 겪는다. 이걸 하러 나는 여기에 왔다.
_ 황정은, <작은 일기>, 135쪽
'목격하려고 사는 삶'으로 오늘 하루를 보니 다르게 보인다. 아무 맛없는 맨밥 같은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름다움이 촘촘히 박힌 아이스크림 같은 하루였다.
10월 15일 수요일 기록
희망을 나는 믿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럼에도 세상을 보는 마음엔 늘 모종의 믿음이 남아있고 이것이 뭘까, 이것을 다른 이들은 뭐라고 부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가능성. 너무 평범한 말이라서 그 말을 발견하는 데 오래 걸렸다. 가능성을 믿는 마음, 그것 믿으려는 마음은 언제나 내게도 있다. 언제나 가능성은 있다.
_ 황정은, <작은 일기>, 171쪽
희망보다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더 좋다. 희망은 너무 희망적이고, 떠난 자리에 꼭 좌절을 두고 가서, 배신을 여러 번 당해서, '희망'이란 단어에 신뢰를 잃었다. 가능성이란 단어는 불가능성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면서도, 기대감이라는 수도꼭지는 꽉 잠그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
10월 17일 금요일 기록
그런데 말이죠, 집에서 키우는 개, 돼지와 산토끼가 어떻게 다르죠?
_ 올가 토카르추크,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282p
요즘 다이어트를 한다. 단백질을 더 먹어야 한다는 말에, 소고기며 돼지고기며, 생선을 더 먹는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다른 생명을 먹나.
10월 18일 토요일 기록
고통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진리
_ 올가 토카르추크,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165p
2022년 8월 4일 육각형 모양 자궁수축제 세 알을 받아먹었다. 근엄해 보이는 간호사가 내가 제대로 삼켰는지 두 번이나 물었다. 그러곤 열 시간 후에 고통이 종료되었다. 고통이란 단어를 들으면 이제 그날이 떠오른다. 그 시간에 나도 고통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진리를 포착하게 되었다.
- 나는 살아 있다.
- 살아있다는 건 엄청난 것이구나.
- 내 남편도 살아있다.
10월 19일 일요일 기록
아름다운 고독
_ 올가 토카르추크,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리를 끌어라>, 225p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새벽에 깨어있는 시간이 늘었다. 남편은 내가 ADHD라는 증거가 바로 이거라고 했는데, 이번 주 책을 읽다가 내가 왜 그런지 정확히 알았다. 고독함을 느끼기 위해서. 사색하기 위해서. 요즘 내게 가장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