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5년 11월의 밑줄(2/2)

이은용, 캐시박홍, 서경식, 최인철을 읽다가

by 카후나

11월 19일 수요일 기록


유언자 D는 본인의 의지에 의해, 나의 자필로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 재산이 많이 없을 가능성이 높으니, 가능한 한 장례식에 써주었으면 좋겠다. 아래는 장례식에 관한 내용이다. 하나, 장례식은 가급적 너무 슬픈 분위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_ 이은용,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 81쪽


남편에게,

나도 농담이 (아니)야. 내 장례식도 가급적 너무 슬픈 분위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 채식주의자 친구들이 먹을 게 많았으면 좋겠고, 외국에 살아서 못 오는 친구들이 참여할 수 있게 온라인 장례식? 추모식?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외국인이라 한국 장례를 전혀 모르니, 주도적으로 장례를 치르기 어려울 거야. 이건 내가 K에게 부탁해놓을게, 도와줄 거야. 더 자세한 내용을 자필로 적고, 날짜도 써서 통장 넣는 서랍에 둘게. 조금만 슬퍼하고,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오토바이 운전 조심하고, 하나를 잘 부탁해. 안 그럼 계속 나타나서 놀래켜 줄거야.

1763956150_0.jpeg?w=1500

11월 21일 금요일 기록


삶의 경험이 다채로워지고, 월경이 멈추죠.

가장 좋은 게 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제 인생은 생리를 하던 때와 하지 않던 때로 나뉩니다.

_ 이은용, <월경>,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27쪽


곧 생리예정일이다. 이걸 이젠 몇 년만 더 하면 되겠구나.

그럼 또 내 인생의 다른 마디가 생기겠지?

1763956171_0.jpeg?w=1500

11월 17일 월요일 기록


인종적 자기 혐오는 백인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고, 이것은 나를 자신의 최악의 적으로 만든다. 유일한 방어책은 자기를 심하게 다그치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이것이 강박적으로 되면서 거기서 위안을 찾게 되고, 결국 자신을 죽도록 구박하게 된다.

_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26쪽


네덜란드에서 살던 그 2년이 나를 더 강박적으로 만들었다. 정말 내가 스스로에게 인종적 자기혐오(백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가 있는 걸까? 있는 것 같다. 혹시 내가 남편(백인)이랑 결혼하게 된 것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 걸까? 퓨어 러브라고 생각했는데...

1763956193_0.jpeg?w=1500

11월 20일 목요일 기록


대해를 떠온 작은 배가 가는 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수평선 저편에서 육지의 그림자를 찾듯, 다섯 명의 가족은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이 있을 지 모르는 강기슭을 향해 떠가는 것이다.

_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139쪽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물어야 한다. 8살, 6살 애들을 데리고 삼 일을 걸어서 슬로바키아부터 독일까지 사선을 넘은 일에 대해서. 남편은 6살이었지만, 그때를 기억한다고 했다.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청바지를 입어보고, 초콜릿을 먹어봤다고 했다. 시엄마, 시아빠는 왜 그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까? 단 한 푼도 없이 난민 보호소에서 살던 그 1년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와서 애 둘을 키우는 것은 어떤 일이었을까? 궁금하다.

1763956221_0.jpeg?w=1500

11월 18일 화요일 기록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을 때, 무언가를 배워서 성장했다는 느낌이 충만할 때,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일을 잘해낼 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믿을 사람이 있다고 안심할 때, 그리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을 때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은 존중, 성장, 유능, 지지, 자유과 같은 내면의 욕구에 의해 결정된다.

_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168쪽


10점 만점이라고 보면

존중 8 (부모님이 가끔 무시한다.)

성장 7 (나를 충분히 닦달하지 못하고 있다.)

유능 5 (초보 엄마, 초보 브랜드 운영자, 초보 아내, 초보 글쓰기, 초보 글읽기, 유능한 게 없다.)

지지 7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남편과 딸이 있다. 안심이다.)

자유 7 (육아 중에 이 분야에 이 정도면 만족한다. 둘째는 정말 무리다.)

현재 내 행복감은 50점 만점에 34점

1763956256_0.jpeg?w=150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5년 11월의 밑줄(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