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의 글쓰기 25기 6차시 수업 후기
(매우 김 주의)
1. 올가 토카르추크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읽고 나누기
- (에 앞서 1) 10년 전 감응 학인이었던 임희정 아나운서가 건설 노동자였던 아버지 이야기를 글로 쓰기 위해 왔었고, 결국 그 글을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라는 책으로 엮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역시 남들의 해석 말고, 내가 내 인생 써보는 경험이 중요하고 글쓰기는 삶을 임하는 자세를 바꿔주는구나."
- (에 앞서 2)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한 바를 이룬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며,
"잘하고 싶은 사람/준비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짜 열심히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니까요." (충격! 근데 맞다!)
- 이 책은 소설인데 철학책 같죠. 양서란 철학책 같은데 문학적이고, 장르가 헷갈리는 그런 면이 있죠.
- 이 책의 인물을 보면, 인간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캐릭터들이 나와요. 주변에 보거나, 심지어 한국 소설을 봐도 어디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 많은데 (다 깎여나간 인물), 그런데 이 책에는 거친 인물들/원석 같은 인물들이 나오는데요. 이런 캐릭터 만들 수 있는 작가 별로 없죠.
- 그 말들이 어디선가 내게로 흘러 들어왔으므로 나는 그것들을 밖으로 내뱉어야만 했다(155p) - 이게 글쓰기 아니예요?
- (통증/증세에 대해) 실제로 몸이 아파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죠. 다들 파티하고 있을 때 물러나면 보이는 게 있는 것처럼요.
- (감옥에 대해) 선택지가 없는 삶이 감옥 아니겠어요? 그리고 감옥은 물리적 감옥만 있는 게 아니죠. 관계의 감옥, 시간의 감옥 등 감옥은 많죠.
- (앤 친구) 활동가 중에서 뭐 저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거의 동물권 쪽이거든요. 그렇게까지 해야 사람들이 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2. 합평
하루, <17층에 작용하는 인력과 척력>
누구나 이웃이 있지만, 이웃과 거리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하루의 이웃과의 세계를 담은 글을 보며 '이웃과 적당한 거리'를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하루의 찐텐이 나온 이완된(?) 글을 읽을 수 있어 무척 반가웠어요.
(글쓰기 관련 은유샘+앤 친구+ 다른 학인들 이야기)
- 관념적이지 않으니까 눈에 그려지고 공감도 됐어요.
- 일상글을 쓰면 그래서 내가 뭘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죠. 독자가 뭘 얻어갈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요. '중심 사건'으로 그걸 드러낼 수도 있어요.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묶어주는 단락도 만들어 볼 수 있고요.
수수, <그때 우리에게 사랑 말고는 무엇도 없었다.>
이렇게 달콤한 투병기는 지금까지 어디에도 없었다. 특히, 저는 희망의 조각을 가득 모아 안겨주고 싶었다. - 이 부분이 계속 떠올라요. 사랑해 말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의 모습이라 그런가 봐요.
저도 난임 치료 3년 받으면서 남편과 훨씬 가까운 관계/입체적인 관계가 되었는데요. 보통 데이트로는 안 가는 병원에서 손잡고 뽀뽀하고(몰래), 노메이크업/수술복 등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했던 게 제 사랑을 '도와'주었다고 느껴요. (내 사랑의 방해물을 넘어 더 큰 사랑을 할 거야라고 해야 할까) 혹시 수수는 그때 일이 수수의 사랑에 어떤 영향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역시 묻지 못했습니다. 멋진 글 함께 읽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건강해지셨다니 더욱!
니나, <조각: 말과 몸>
저는 자신을 부정하던 사람이 자신과 화해하는 이야기로 읽었어요. 앞으로도 부정과 화해가 만나는 그 딜레마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세요. 다음 조각 어서요. 창작자 니나의 앞으로의 글을 기대하게 한 멋진 글을 써줘서 감사해요.
3. 질문과 뒤풀이 후기
- (인터뷰에 대해) 내가 궁금한 사람을 인터뷰하면 돼요. 2시간 딥토크 하고 싶은 사람이 누군가 생각해 봐요.
- 뒤풀이는 사랑입니다. 근데 말을 또 너무 많이 했나 봐요. 아나타가 알바하는 바에서 써비스를 너무 많이 주셔서 분명 많이 먹었는데, 집에 와서 또 밥을 먹었;;어요. 왜 이렇게 내가 뒤풀이에 집착하는가 잠시 생각해 봤는데요.
1) 책 대화 가능: 제 친구들은 책을 안 읽어요. 어젠 우미랑 박완서 작가님, 최진영 작가님 소설 이야기를 침 튀기며 하는데 굉장히 씐나더라고요.
2) 언어가 통일된 공동체: 이젠 '좌표', '디아스포라적', '감옥' 등 남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언어가 있어서 더 재미져요. 공통의 경험(책+수업)으로 다져진 우리.
3) 대화의 밀도와 수준: 겉도는 이야기가 제일 지루하잖아요. 우리 뒤풀이 대화 깊이는 적어도 합정동 탑티어 확실합니다.
4) 모국어로 수다 떨고 싶은 욕구 폭발: 남편이랑은 외국어로 대화하니까 생활에서 내 마음을 정확한 단어로 말하고 싶다는 욕망이 계속 쌓여요. 그걸 일주일 동안 쌓았다가 뒤풀이에 가서 한풀이하나 봐요.
4. 윌리엄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 중 <지옥의 격언>
제목을 이해하고 싶어서 윌리엄 블레이크 찾아봤다가, <지옥의 격언>에 빠져버려서 후기 정리하는 데에 너무 오래 걸려버렸네요. 그래도 올가 언니가 왜 두셰이코 같은 인물을 창조했는지, 왜 윌리엄 블레이크 시를 이 소설 전체에 배치했는지, 아주 조금 이해가 돼요.
- 블레이크는 행동없는 도덕을 비판
- 블레이크에게 분노는 생동성, 진실성, 정의감
- 블레이크는 타인의 고통에 매우 예민했고,
- 성경러버였지만(암호와 상징으로 이해), 교회의 부패를 비판했다고
<지옥의 격언>
- 블레이크의 지옥: 벌 받는 곳 아니고, 억압되지 않은, 디오니소스적인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곳이며, 권위적이고 규율을 강조하는 천국(Heaven)의 인식에 반대되는 곳
-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큰 작품 안에서 역할: 도발적이고 역설적 부분으로, 기존의 생각을 흔들고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함
아래는 <지옥의 격언> 전문
(볼드는 이 소설과 연결된, 밑줄은 제가 좋았던, 괄호 안은 워낙 상징적인 블레이크의 시를 제 언어로 해석)
[14]
In seed-time learn, in harvest teach, in winter enjoy.
씨 뿌릴 때는 배우고, 추수할 때는 가르치고, 겨울에는 즐겨라.
Drive your cart and your plough over the bones of the dead.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The road of excess leads to the palace of wisdom.
과잉의 길은 지혜의 궁전으로 이끈다.
Prudence is a rich ugly old maid courted by Incapacity.
신중함이란 무능력에게 구애받는, 부유하지만 못생긴 늙은 여자다.
He who desires, but acts not, breeds pestilence.
욕망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자는 전염병을 잉태한다.
The cut worm forgives the plough.
잘린 벌레는 쟁기를 용서한다.
Dip him in the river who loves water.
물을 사랑하는 자를 강물 속에 담가라.
A fool sees not the same tree that a wise man sees.
어리석은 자는 현자가 보는 나무를 보지 못한다.
He whose face gives no light shall never become a star.
얼굴에서 빛이 나오지 않는 자는 결코 별이 되지 못한다.
Eternity is in love with the productions of time.
영원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을 사랑한다.
The busy bee has no time for sorrow.
부지런한 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
The hours of folly are measured by the clock, but of wisdom no clock can measure.
어리석음의 시간은 시계로 잴 수 있지만, 지혜의 시간은 어떤 시계로도 잴 수 없다.
All wholesome food is caught without a net or a trap.
모든 건강한 음식은 그물이나 덫 없이 잡힌다.
Bring out number, weight, and measure in a year of dearth.
흉년에는 수·무게·측정을 드러내라.
(결핍의 시기는 우리는 더 명확하게 만든다.)
No bird soars too high if he soars with his own wings.
자기 날개로 나는 새는 너무 높이 날 수 없다.
A dead body revenges not injuries.
죽은 몸은 상처에 복수하지 않는다.
The most sublime act is to set another before you.
가장 숭고한 행위는 타인을 자기 앞에 두는 일이다.
If the fool would persist in his folly he would become wise.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현자가 된다.
Folly is the cloak of knavery.
어리석음은 간악함의 외투이다.
Shame is Pride’s cloak.
수치는 교만의 외투이다.
[15]
Prisons are built with stones of law, brothels with bricks of religion.
감옥은 법의 돌로 지어지고, 매춘굴은 종교의 벽돌로 지어진다.
The pride of the peacock is the glory of God.
공작의 자만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The lust of the goat is the bounty of God.
염소의 욕망은 하나님의 은혜다.
The wrath of the lion is the wisdom of God.
사자의 분노는 하나님의 지혜다.
The nakedness of woman is the work of God.
여성의 나체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Excess of sorrow laughs, excess of joy weeps.
지나친 슬픔은 웃고, 지나친 기쁨은 운다.
The roaring of lions, the howling of wolves, the raging of the stormy sea, and the destructive sword, are portions of Eternity too great for the eye of man.
사자의 울부짖음, 늑대의 통곡, 폭풍우 치는 바다의 격노, 파괴적인 칼날—이 모두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너무 큰 ‘영원의 조각들’이다.
The fox condemns the trap, not himself.
여우는 덫을 비난할 뿐, 자기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Joys impregnate, sorrows bring forth.
기쁨은 잉태시키고, 슬픔은 산통을 일으킨다.
(기쁨은 가능성을 만들고, 슬픔은 실제로 무언가를 탄생시킨다.)
[16]
Let man wear the fell of the lion, woman the fleece of the sheep.
남자는 사자의 가죽을, 여자는 양의 털가죽을 걸쳐라.
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사람에게는 우정이 있다.
The selfish smiling fool and the sullen frowning fool shall be both thought wise that they may be a rod.
웃는 바보와 찡그린 바보는 모두 지혜로 여겨지리니, 둘 다 매의 몽둥이가 되기 때문이다.(지혜롭다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당할 수 있다.)
What is now proved was once only imagined.
지금 증명된 것은 한때 단지 상상이었다.
The rat, the mouse, the fox, the rabbit watch the roots; the lion, the tiger, the horse, the elephant watch the fruits.
쥐·생쥐·여우·토끼는 뿌리를 지켜보고, 사자·호랑이·말·코끼리는 열매를 지켜본다.
(약한 존재들은 생계 걱정을 하고, 권력자들은 더 큰 권력을 추구한다.)
The cistern contains, the fountain overflows.
저수지는 담을 뿐이지만, 샘은 넘쳐흐른다. (고여있는 것은 생기를 잃고, 흐르는 것은 생기를 얻는다.)
One thought fills immensity.
하나의 생각이 무한을 채운다.
Always be ready to speak your mind, and a base man will avoid you.
항상 네 생각을 말할 준비를 하라. 비열한 자는 너를 피해 다닐 것이다.
Everything possible to be believed is an image of truth.
믿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진리의 이미지이다.
[17]
The eagle never lost so much time as when he submitted to learn of the crow.
독수리는 까마귀에게 배우겠다고 시간을 낭비한 적이 없다.
The fox provides for himself, but God provides for the lion.
여우는 스스로를 돌보지만, 사자는 신이 돌본다.
Think in the morning, act in the noon, eat in the evening, sleep in the night.
아침엔 생각하고, 정오엔 행동하고, 저녁엔 먹고, 밤엔 자라.
He who has suffered you to impose on him knows you.
네 속임수를 받아준 사람은 너를 이미 알고 있다.
As the plough follows words, so God rewards prayers.
쟁기가 말을 따르듯, 신은 기도를 따르는 행동을 보상한다. (농부의 말에 쟁기가 움직이듯이 행동을 해야, 신이 너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다.)
The tigers of wrath are wiser than the horses of instruction.
분노의 호랑이는 훈계의 말보다 더 지혜롭다. (의로운 분노는 죽은 가르침보다 더 지혜롭다.)
Expect poison from the standing water.
고여 있는 물에서는 독을 기대하라.
You never know what is enough unless you know what is more than enough.
너는 ‘너무 많음’을 알기 전에는 ‘충분함’을 모른다. (넘치게 해 봐라. 다른 기준이 보인다.)
Listen to the fool’s reproach; it is a kingly title.
바보의 비난을 들어라. 그것은 왕의 칭호다. (비난을 주체적인 자에게 붙는 훈장처럼 여겨라.)
[18]
The eyes of fire, the nostrils of air, the mouth of water, the beard of earth.
불의 눈, 공기의 콧구멍, 물의 입, 흙의 수염. (자연은 몸의 기관처럼 연결되어 있다.)
The weak in courage is strong in cunning.
용기가 약한 자는 교활함이 강하다.
The apple tree never asks the beech how he shall grow, nor the lion the horse how he shall take his prey.
사과나무는 자라나는 법을 너도밤나무에게 묻지 않고, 사자는 사냥법을 말에게 묻지 않는다. (자기 방식으로 성장해야 한다.)
The thankful receiver bears a plentiful harvest.
감사하는 자는 풍성한 수확을 거둔다.
If others had not been foolish we should have been so.
다른 이들이 어리석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어리석었을 것이다. (타인의 어리석음에서 서로서로 배운다.)
The soul of sweet delight can never be defiled.
달콤한 기쁨의 영혼은 더럽혀질 수 없다. (기쁨은 신성하다!)
When thou seest an eagle, thou seest a portion of Genius. Lift up thy head!
독수리를 보면, 그것은 천재성의 한 조각이다. 머리를 들어라! (자신 안의 위대한 잠재력을 보면, 잘 알아차려라.)
As the caterpillar chooses the fairest leaves to lay her eggs on, so the priest lays his curse on the fairest joys.
애벌레가 가장 고운 잎에 알을 낳듯, 사제는 가장 고운 기쁨에 저주를 내린다.
To create a little flower is the labour of ages.
작은 꽃 하나를 만드는 일은 수많은 세월의 노동이다.
[19]
Damn braces; bless relaxes.
긴장을 저주하라; 이완을 축복하라.
The best wine is the oldest, the best water the newest.
가장 좋은 포도주는 가장 오래된 것이고, 가장 좋은 물은 가장 새로운 것이다. (깊이와 생명력 둘 다 필요하다.)
Prayers plough not; praises reap not; joys laugh not; sorrows weep not.
기도는 땅을 갈지 못하고, 찬양은 수확을 거두지 못하며, 기쁨은 웃지 못하고, 슬픔은 울지 못한다. (말만 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칭찬도 그렇다. 기쁘다는 감정이 웃는 게 아니고, 슬프다는 감정이 우는 게 아니다. 실제 몸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 개념은 행동을 대신할 수 없다.)
The head Sublime, the heart Pathos, the genitals Beauty, the hands and feet Proportion.
머리는 숭고함, 심장은 파토스(감정), 성기는 아름다움, 손과 발은 비례다.
As the air to a bird, or the sea to a fish, so is contempt to the contemptible.
새에게 공기가 그러하듯, 물고기에게 바다가 그러하듯, 경멸은 경멸받을 자에게 그러하다.
The crow wished everything was black; the owl that everything was white.
까마귀는 모든 것이 검었으면 하고, 올빼미는 모든 것이 희었으면 한다.
Exuberance is Beauty.
풍성함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억제보다 과잉!)
If the lion was advised by the fox, he would be cunning.
사자가 여우의 충고를 따랐다면 교활해졌을 것이다.
Improvement makes straight roads, but the crooked roads without Improvement are roads of Genius.
개선은 길을 곧게 만들지만, 개선되지 않은 굽은 길은 천재의 길이다.
[20]
Sooner murder an infant in its cradle than nurse unacted desires.
행동하지 않은 욕망을 품느니, 차라리 요람 속의 아기를 죽여라.(행동하지 않는 욕망이 최악이다.)
Where man is not, nature is barren.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연은 황폐하다.
Truth can never be told so as to be understood and not to be believed.
진리는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해지는 한, 믿지 않을 수 없다.
Enough! or Too much.
충분하다! 혹은 너무 많다! (충분히! 아니 더 많이! 절제, 억제해서 중간치기 하지 마라잉)
+
윌리엄 블레이크의 첫 직업이 판화가였고 아래가 그의 채색없는 버전의 작품들인데, <쟁기>에 나오는 판화랑 비슷해서 소오름 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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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The_Marriage_of_Heaven_and_Hell (한국어로 변경하면 내용이 대폭 사라져요. 번역해서 보는 게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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