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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Feb 27. 2023

2월의 밑줄(1/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2월 첫 주에 저를 살려준 문장과 그 문장에서 우러나온 제 마음을 짧은 글로 남겼습니다.


02월 06일 월요일  

사람은 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본다. 우리는 또한 믿는 대로 듣는다.

<기대의 발견> 데이비드 롭슨

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배신감이 든다. 나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지만, 대뇌피질에서 불러오는 기억은 편집되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오늘 읽은 책에 따르면 뇌에서 예상한 대로(믿는 대로) 보고, 듣고, 심지어 맛을 본다. 맛있겠다고 믿는 음식이 더 맛있다는 것이다. 코스로 나오는 비싼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면서 음식은 못 먹게 벌세우고, 일 분 넘게 요리에 대해 설명을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런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 이런저런 맛이겠구나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맛있겠다 군침이 도는데 역시 이것도 반은 뇌에 속는 것이었다. 경험하기 전 기대와 예측이 실제 뇌의 활동과 생리적 활동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오늘 읽은 이 책의 첫 50페이지의 내용이다. (심리적 영향으로 실명이 된 여자의 사례는 정말 놀라웠다. 서프라이즈인 줄)


그런데 어차피 뇌에 이렇게 속을 수밖에 없다면, 우리의 뇌가 항상 이렇게 작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제는 속지 말고 잘 이용해 볼 수도 있겠는데 싶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은 과도한 걱정 끊어 내기이다. 창문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태어난 나는 제조업을 하시는 부모님 곁에서 걱정하는 것을 평생 배웠다. 아버지는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야 대비를 할 수 있다고. 살면서 필요한 사고방식이고, 사업에서는 무척 유용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최악을 상상하며 살아보니, 하루하루가 너무 무거워진다. 걱정이 쌓이고 쌓여 나를 눌러 긴장만 하고 움직임도 굼뜨게 된다. 내가 원하는 모습은 산뜻한 시선으로 가볍게 움직이고 싶은데 말이다.


책에 나온 것처럼, 뇌는 믿는 것, 기대하는 것에 더 집중해서 반응하는 예측 기계라면, 그동안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 최악 시나리오가 아닌, 최고의 상황을 상상해 보거나, 걱정이 아닌 희망적 이미지를 기대한다면 어떨까? 걱정하는 습관을 떼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50페이지 밖에 읽지 못해서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책에 나를 도와줄 작은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다.


02월 07일 화요일

But I
네 생각으로 힘이 나네
방금 전에 널 본 것처럼
유난히 널 닮은 별 아래 세상이 환하게 보여
넌 나를 빛나게 해 존재만으로

원슈타인의 노래 <존재만으로>

길을 가다가 갑자기 멈췄다. 모르는 노래였는데, 온 마음을 빼앗겨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대로 서서 들었다. 원슈타인의 <존재만으로>였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나온 노래라는데 한 박자 느린 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그리고 이 3분 30초짜리 노래를 오늘 3시간 30분 이상 듣고 있다.


‘네 생각으로 힘이 나네’를 들으며 정말 생각만 해도 힘이 나는 사람들과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처음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였는데, 좋아했던 6학년 오빠를 생각만 해도 힘이 났다. 교실 복도나 운동장에서 멀리서만 봐도 세상이 환해졌다. 이런 마음이 어색하지만 감정은 확실하다고 하교하는 길에 미끄럼틀 위에 앉아 생각한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도 생각만 해도 힘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옆자리 친구일 때도 있었고, 좋아하는 가수인 적도 있고, 조카가 태어나고는 조카만 떠올려도 힘이 난다. 부모님은 항상은 아니지만 특히 아주 힘들 때면 첫 번째로 마음속에 도착해 힘을 주기도 하신다. 오늘 이 노래를 들으며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살아갈 빛이 된다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유난히 찡하게 다가왔다.



02월 08일 수요일

다들 지금 자신에게 없는 사람이나 없는 것들을 소망했다. 애인을, 돈을, 건강을, 행운을, 도넛이 가운데 구멍을 생각하듯이, 뭔가를 원한다는 건 지금 자기에게 없는 걸 원한다는 뜻이었다.

<원더보이> 김연수

리사는 남편 친구네 개 이름이다. (아래 사진이 있어요.) 지난 주말에 그 집 가족들이 스키 타러 간다고 남편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주말 손님으로 집에 왔다. 리사는 내가 아는 개들과 달랐다. 우리 집에는 자주 오는 다른 개가 있는데(이름은 오디), 어디든 나를 따라다닌다. 언제든 사람과 함께 있으려고 한다. 리사는 화장실이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그곳에 있었다. 그리곤 밥 먹고, 산책 갈 때만 나왔다. 물론 각자의 성격이 있겠지만, 리사는 고양이처럼 독립적이라 신기했다. 사적인 시간이 있는 개라니.


남편에게 물어봤다. 이렇게 다를 수 있냐고. 그는 아마도 리사는 하루종일 어린아이들이랑 같이 있어서 (시달려서) 혼자 있는 시간을 원하는 것 같고, 오디는 종일 혼자 있으니 곁에 사람이 있길 원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맞는 답일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 <원더보이>에 나왔던 저 문장이 떠올랐다. 도넛이 가운데 구멍을 생각하듯 리사와 오디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소망하는구나. 나를 포함해서 없는 것을 소망하는 모든 동물이 애틋하기도 하고, 왜 가진 것은 소망하지 못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02월 09일 목요일

쌓이기만 하는 지식은 인간에게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거나 단지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저 겉옷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배우는 사람은 끝없는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배워서 알게 된 것들이 존재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도토리를 볼 안에 빵빵하게 물고, 다른 도토리는 어디 있나 찾는 청설모처럼 욕심내서 책을 사고 또 산다. 책장을 어슬렁 거리며 가장 맛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서 밑줄을 그어 가며, 다시 도토리를 찾는 다람쥐가 되어 문장을 모은다. 배우는 것에는 아끼지 않는다는 구호로 살고 있어서 배운다는 명목으로 자주 플랙스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 존재 밖에서 배우는 일에 참 성실하게 열정적이다.


그렇게 투자한 것이 정말 배우고 싶다는 욕구였는지, 난 뭐든 하고 있으니 괜찮아라는 안도감을 얻기 위함인지, 두 욕구가 적절히 혼합되었는지 모르겠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배운다고 했지만 겉옷만 갈아입는 것처럼 배운 척을 한 적도 많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입지도 않을 민트색 카디건을 기분전환 겸 주문한 것처럼. 그렇게 배움들이 내 일부가 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작가는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배우는 사람은 끝없는 변화를 체험한다고 했는데, (이어지는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몸으로 체험한 것들만 내 안에 남았다. 지리산을 17시간 동안 종주하며 거의 조난당할 뻔하며 온몸의 고통을 겪고 비로소 내가 오만하다는 것을 알았고, 유산의 진통을 참아내며 생명에 대해 배웠다. 이 문장을 읽고서는 내가 무언가를 배웠다고 이야기할 때 조심해서 말하게 될 것 같다.


02월 10일 금요일

THE GRATEFUL FLOW: The key is not saying the same things over and over that you are grateful for.

다큐멘터리 <Stutz> 중

밑미 문장메모 리추얼 메이트님들의 추천으로 보게 된 다큐멘터리이다. 추천은 받았지만 기대를 안 하고 봤다가, 오열을 세 번이나 하며 나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걱정이 많은 나는 감사한 것을 나열하기만 해도 걱정보다 그 위에 존재하는 희망과 만날 수 있다는 스터츠 님의 이야기를 듣고 무척 고무되었다. 매일 실천하고 있다. 물론 아직 저 위에 태양은 만나지 못했지만, 구름이 조금씩 흐려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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