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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Mar 21. 2023

3월의 밑줄(2/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3월 둘째 주에 읽으면서 무의식에서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온 마음을 받에 적었습니다.


03월 13일 월요일

✍️생일파티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을 누리는 날이다.

사샤 세이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작년에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나 왜 이리 축하할 줄도 축하받을 줄도 모르지? 매우 분발이 필요한 분야라서 친구들에게 선언하고 스스로 여러 번 다짐도 했다. 축하할 일을 만들어서라도 축하하고 축하받으며 살 거라고. 그게 잘 사는 비법이라고 이 책에서 배웠으니까. 오늘은 이 다짐에 대한 시험날이었다. 남편의 생일.


아침에 눈곱 낀 얼굴로 우쿨렐레를 음정 상관없이 사정없이 당기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불협화음으로 오늘을 시작했다. 스티비 원더 <Happy Birthday> 노래를 같이 듣고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하루를 살고 이제 자려고 누웠다.


나에게 생일 축하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생일을 ‘어떤’ 마음으로 축하하는 지였다. 생일은 누구나 있는 거고 태어난 것은 생일 당사자의 노력보다는 부모님의 고생이었을 것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이 문장을 보고 감을 잡았다. 오늘까지 살아남아서 뛰는 심장을 가지고 따뜻한 손을 잡고 입 맞추며 생일을 함께할 수 있다니. 이것은 진심으로 축하할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래도 합격 축하나 결혼 축하하는 것 같은 ‘축하’의 마음은 들지 않았다. 생일을 온전히 ‘축하’하는 마음은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살아남아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축하는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최대한 남편으로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지냈다.


나의 축하가 어땠냐고 방금 물어봤다. 굿이란다. 그러면서 항상 혼자 생일을 축하했는데 이제 자신의 생일에 내가 함께 들어와 있어서 좋다고. 이런 말을 들으니 오늘은 내 생일도 아닌데 내가 선물을 잔뜩 받아버린 기분이다.  



03월 14일 화요일

✍️길들여지지 않은 사유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127p


제 마음속 최전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여러분께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보고합니다. 그것은 바로 대충입니다. ”그까이껏 대충 해“ 이 말을 혼잣말로 가장 많이 합니다. 특히 최근 2주 사이에 저에게 집중적으로 세뇌시키고 있는 말입니다. (*마음속 최전선의 의미: 제가 제 마음과 싸우는 접전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주먹다짐 하는 곳)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다가 이 단어를 읽고 무릎이 꺾였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사유'

주저앉아 있으니 은유 작가님이 ‘너.. 말이야 그렇게 길들여진 사유만 해서 어쩌려고 그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책을 덮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네요. 색칠공부할 때 금은 절대 넘지 않는 어린이였습니다. 언젠가 그런 것으로 칭찬을 받았는지 원래 그런 성향인지 모르지만, 그 어린이는 커서 냉장고 안의 반찬통과 소스통의 오와 열을 맞추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 머릿속은 자유보다는 규율이 많습니다. 안과 밖의 경계도 뚜렷합니다. 모네보다는 칸딘스키 그림 같은 모습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준비와 대비다. 뭘 하든 열심히 해야 한다. 자라온 가정에서 사용한 언어가 이렇기 때문인지, 손톱을 물어뜯는 불안한 성향의 인간이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대한 바른 길, 올바른 과정, 완성의 정도와 같은 기준이 뚜렷합니다. 이런 식으로 40년을 살고 보니 스스로에게 빼앗기는 에너지가 너무 많습니다. 이제는 ’ 대충 해! 근데 해 ‘ 이런 마인드로 바뀌고 싶습니다. 경계가 희미한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으로 변하고 싶어요. 뭐 칸딘스키가 모네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겠만 나에게 공간을 주고 대충 생각하고 대충 실행하며 대충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길들여지지 않은 사유도 아주 가끔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나저나 여러분들 마음속 최전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궁금합니다.



03월 15일 수요일

✍️침묵

Headspace 명상 앱에서 들은 말


힘들 때만 종교를 찾는 사람처럼 이번 주는 긴장할 일이 있어서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삶의 밀도가 에스프레소 급인 친구들과 장시간 수다를 떨고 집에 왔더니 분명 즐거운 시간이었는데도 집에 오니 머리가 아팠어요. 명상 앱을 켜고 들이쉬고 내쉬고를 몇 번 하고 있는데 이런 말이 (아래) 나왔습니다. 방금 전까지 말의 바다에서 말의 비를 맞으며 말에 흠뻑 졌었던 저에게 침묵이란 단어가 아주 크게 들렸습니다.


Traditions may bind us,

cultures alienate us,

languages and words divide us,

but in silence we are united.

Free from blame and bias, we discover place of mutual empathy and respect.


전통은 우리를 가두고,

문화를 우리를 소외시키고,

언어와 단어는 우리를 가른다.

그러나 침묵은 우리를 이어준다.

침묵 속에서는 비난과 편견에서 벗어나 서로를 공감할 수 있다.  



03월 16일 목요일 인증글    

✍️시작을 해야 능력의 확장이 일어난다. (...) 아무리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능력에서 출발하기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57p


왜 그럴까요? 제가 가진 것들이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예쁘게 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오늘은 그간 한 일을 다른 눈으로 보았습니다. 빠진 것들이 많이 보였어요. 곧 계약할 회사도 이쪽저쪽에서 다정하게 봤다가 흘겨봤다가 해봅니다. 역시 딱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사무실에 벽에 지난주에 붙여 놓은 문장메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 상황이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그게 네 능력이니 거기서 출발하면 된다고 격려를 크게 해 주네요. 어떤 응원보다도 더 크게 용기가 생깁니다. 일단 출발하면 나도 확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야무진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저는 가끔 저를 너무 고정된 사물처럼 볼 때가 있어서 이렇게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잊습니다.


용기가 나니 또 떠오릅니다. 효주 님의 최전선 문장이요.

“나 의외로 괜찮을지도?”

“의외로 하는 일들도 다 잘 풀릴지도?”


03월 17일 금요일

✍️일상생활과 관계가 없는 아득히 먼 자연. 그곳에 갈 필요는 없다. 그냥 그곳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우리에게 상상력이라고 하는 풍요로움을 건네주기 때문일 것이다.

호시노 미치오 <긴 여행의 도중>


과거의 내가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찾고 싶은 문장이 있어서 에버노트에 정리해 놓은 문장들을 쭉 다시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밑줄 친 문장을 에버노트에 옮기며 한 번 더 우려 읽는 타입) 이 책을 읽은 21년 가을의 내가 참 고맙더군요. 또 이 책을 처방해 준 사적인 서점의 정지혜 대표님에게도 무척 고마웠습니다.


이 책의 문장을 쭉 읽고 있자니 작가가 알래스카에 살며 야생동물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모습이며, 거대한 순록 무리가 계절을 따라 이동하는 이미지, 같은 고래를 여러 번 다시 만나 반가워하던 그의 모습이 마음속에 생생하게 그려졌어요. (고래마다 꼬리에 인간의 지문 같은 표식이 있어 알아볼 수 있다고) 잠시 이 문장을 옮겨 적으며 그 장면을 다시 여러 번 재생해 보기도 했어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연에서 늑대가 새끼를 낳고, 유콘강이 녹고, 겨울을 지낸 알래스카의 딸기가 열매를 맺고, 북극곰이 겨우 잠을 마치고 아직 졸린 눈으로 새끼 곰과 굴 밖으로 나오는 이 세상이 유난히 아름답게 상상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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