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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Mar 20. 2023

3월의 밑줄(1/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아직은 추운 3월 첫 주에 읽은 문장들과 그 문장에서 우러나온 마음을 적었습니다.


03월 06일 월요일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어젯밤 자다 깨서 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꿈에서 심하게 체한 것이다. 그 불편한 느낌이 생생히 떠오른다. 우웩. 꿈이니 신기할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음식을 먹고 체한 게 아니었다. 책을 많이 읽고 그 문장들이 국수 면처럼 내 위로 가서 체한 것이었다. 꿈에서 이렇게 계속 읽으면 소화가 안 될 텐데 계속 읽어도 되나?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평소에 밥 먹으면서, 이렇게 계속 먹어도 되나? 소화가 안 될 텐데 하고 생각했는데 이것의 다른 버전이었나 보다.) 아무튼 토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자기 전에 읽은 책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건 또 무슨 괴상한 욕구인지, 지난주부터 최대한 공감할 수 없는 책을 읽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싶은 것일까?*) 이런 마음으로 책장 앞에서 서성이다가, 체코 작가가 공산주의 시대에 쓴(1976년 작) 폐지 압축 경의 이야기를 찾고는 꽤 신났었다. (이 정도면 꽤 먼 곳의 이야기군.) 그런데 세상은 생각보다 더 이어진 모양이다. 50페이지쯤 읽으니 주인공과 슬슬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책에 대한 애정으로. 일단 그가 폐지 압축 공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책을 가까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매일 머리 위로 버려지는 책들 중 압축하기는 아까운 양서를 챙겨서 읽는다. 그렇게 삼십오 년 동안 노자, 카뮈, 헤겔, 쇼펜하우어 등을 읽어,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되었다. 특히, 읽은 문장을 사탕처럼 빨아먹고, 리큐어처럼 홀짝댄다고 할 때는 문장 메모 리추얼을 10개월째 하며 문장을 꾸준히 먹고 있는 내 모습이 겹치기도 했다.

새삼 읽은 문장을 위에서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뇌나 삶으로 소화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아니라면 나처럼 위가 약한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못할 것이다. 읽더라도 한 번에 50페이지 정도로 나눠서 읽어야겠지. (생각만 해도 속 터진다.) 그리고 뇌가 위처럼 소화력이 부족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종일 책을 읽는다고 소화제를 먹거나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 이 책을 읽고 간밤에 꿈을 꾸고 별의별 게 다 감사해졌다. 평생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지 않고 그저 살아 있기에 글을 썼던 흐라발 씨가 그의 책을 밤늦게까지 빨간 눈으로 읽는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이었을까?


*이런 질문을 머리 뒷쪽에 넣고 다니다가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으면서 답이 될 문장을 찾았다.

푸코가 <성의 역사2> 서문에서 말한 호기심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알아야만 하는 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 말이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03월 07일 화요일

✍️어쩌면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지 모른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52p


10개월 동안 문장 메모 리추얼을 하며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읽은 부분에 밑줄이 너무 많아서 고를 수가 없었어요. 이 책이 필독이었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리스펙) 고작 50페이지밖에 읽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가장 감응*한 문장을 골라보았습니다. (*감응: 이 책의 18페이지에 따르면 감동과 감응의 차이는, 감응은 감동에 응함/가슴 밖으로 뛰쳐나가 다른 것과 만나서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변신’의 과정까지 아우름)


그러니까 변신에 대한 이야기네요. 제가 요즘 머리가 깨지게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기획은 끝났고 이제 돈을 들여서 개발 여부를 결정할 시기입니다. 당장 주머니에서 거금이 나갈 생각을 하니 별별 걱정이 장마철 먹구름처럼 빠르게 머리 위로 달려옵니다. 밥 먹다가도, 샤워하다가도 구름이 시꺼멓게 덮칩니다. 그러니 겁이 나 슬슬 꼬리가 내려가더군요. 당장 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요.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비약인줄은 알지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이렇게 글감 빈곤의 시대가 되겠구나. 그것은 내 존재의 빈곤이며 나는 내 존재를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 길로 사무실에 들어와 그동안 미뤄 두었던 결정할 사항들을 모두 적었습니다. 역시 고민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손으로 하는 게 맞더군요. 조금만 구조화시키니 몇 가지 사항은 답을 쥐고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도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문장 전에는 하지 말자였는데 문장 후에는 이렇게 변하다니 이것이 문장의 힘인가요? 알 수 없는 주술에 홀린 것 같기도 합니다.


또 어떤 문장에 감응을 받아 또 어떻게 변신(변심)할지 모르겠지만, 글감이 풍요로운 길은 바른 길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제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뜻이고, 제 존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뜻일 테니까요.



03월 08일 수요일

✍️그런데 잘 쉬는 것은 잘 사는 것과 동등하게 어렵다.

박연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잘 쉬고 계십니까? 뭐 이 정도면 꽤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어제처럼 12시간을 쓰러져 자는 날이 찾아와야 저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나 이거 못하는구나.


저만 이러고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깨닫습니다. 회사에서 없어서 안 되는 내 친구 J. 출산 휴가 기간에도 몇 번이나 회사에 갔던 그녀의 모습과, J의 결혼식에서 그녀의 직장 동료만 3번에 나눠 사진 찍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인정받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알게 되었죠. 하지만, 이제는 45kg도 안 되는 그녀의 한 줌 허리를 보며 너무 짠해집니다. 제 적금 깨서 보약이라도 지어주고 싶어요. 누구보다 빠른 승진에 여행도 자주 가고 웬만한 핫플은 싹 다 방문하는 열정의 K. 그녀는 몸이 3개인 것처럼 살았는데 결국 디스크가 버텨 주지 못해서 퇴사했습니다.


역시 조금 거리가 있어야 더 잘 보이죠. 아끼는 친구들이 뼈와 살과 디스크를 부셔 넣어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습니다. 제발 이틀에 한 번은 더 오래 자고,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운동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은 할머니 잔소리로 들릴 것이 뻔하니 그냥 손이나 꼭 잡아줍니다. 친구들의 몸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제 몸도 안쓰러워지네요. 하루에 빈칸을 더 넣고 휴식에도 제대로 된 자리 하나 내주자고 다짐하는 아침입니다. 우리 잘 쉬면서 살아요.



03월 09일 목요일

✍️‘세상이 이게 다가 아니다’는 것. 눈앞의 보자기만 한 현실에서 벗어나 세상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일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세상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일. 이게 내 본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것도, 리추얼을 하는 것도 어쩌면 세상을 구경하고 접촉면을 넓히고 싶은 욕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태권도장에서 고등학생, 중학생과 어울려 운동할 때도, 수영반에서 할아버지들과 경쟁할 때도, 이직을 자주 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경외심과 매력을 느끼는 것도 접촉면을 넓히는 일이었나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나의 자아를 한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참히 비판하고 나와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반작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평생 접촉할 수 있는 면은 한정적일 것이고 나이가 들 수록 비슷한 사람들과 고만고만한 생각을 나누고 맞장구를 치며 위로받게 되겠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분발하려고 합니다. 안 읽던 분야의 책을 읽고, 지구 반대편 어느 정글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세상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세상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어떤 일을 하시나요? 꿀팁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배우고 싶습니다.


03월 10일 금요일    

✍️월화수목금토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월요일부터 다시 잘해보기 위해서라고.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여주 님이 카톡방에서 나눠 주신 문장이 그 길로 제 품으로 마구 달려와 오늘 저의 문장이 되어주었습니다. 금요일 퇴근길에 이 문장을 쓰니 이번 주에 내가 못한 것, 게을렀던 것, 과하게 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봄 날씨에 얼음이 녹는 것처럼 사르르 사라져요. 그리고 그 자리에 다음 주에 대한 희망이 소복소복 벚꽃 눈이 내리는 것처럼 쌓여요.


후회가 녹으니 이제 그 위로 이번 주에 잘한 것들이 올라오네요. 무식하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지만 필요하다 싶어 용기 내 질문을 한 것, 생각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신규 브랜드 이름을 구상해 본 것, 시작에 앞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응시한 것은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제 안에 사는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한 것 같아서요. 이번 주도 내 레일에서 내 수영을 했으니 이만하면 됐다. 이제 주말을 즐겨보자 스스로 안아주며 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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