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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Sep 05. 2023

8월의 밑줄(3/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8월 21일 월요일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적당히 무관심한 게 좋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_ 박연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독서의 신통방통한 점을 또 하나 찾았다. 과거에 읽었던 문장이 필요한 상황에 계시처럼 떠오른다는 것. 눈 오던 1월에 읽었던 문장인데 마음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제 이 문장에 탁! 조명이 들어왔다.


조리원에 들어와서 아기를 돌보는 일을 배우고 있다. 아기는 자주 배가 고프고, 자주 몸이 불편하다. 그리고 초초초보 엄마는 아기가 울 때마다 초긴장, 안절부절이 된다. 모두 내 잘못인 것 같고 당장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다. 그러다 이 문장이 생각났다. 적당히 무관심한 것의 힘. 신탁을 받은 것처럼 바로 문장을 받아 적었다.


아기는 원래 자주 우는 것이고, 그렇게 대화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매번 울 때마다 눈빛부터 몸짓까지 다 흔들려서는 며칠 만에 지쳐 버리겠지. 아기가 대화법을 찾아가는 것을 천천히 지켜봐 주자. 적당히 무관심하게 바라보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08월 22일 화요일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하루 안에도 배우고 축하할 것이 너무나 많다.

_ 사샤 세이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108쪽


<작년과 올해의 8/22>

같은 리추얼을 1년 넘게 하니 이런 기쁨이 있군요. 22년 오늘 썼던 문장메모를 타고 작년 마음에 다녀왔어요. 그날에는 상상할 수 없는 곳에 도착해 있어서 더 강하게 다가와요.


조리원의 생활은 잠이 모자랄 정도로 바빠요. 피곤하다고 불평할 뻔했는데, 이 문장을 보고 알았네요. 지금 하루 안에도 배우고 축하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그렇구나.


- 수유하는 각도를 배우고, 어려운 도킹이 성공해서 잘 먹으면 환호하고

- 유축하는 법를 배우고, 세상에나 70ml나 나왔다고 남편과 하이파이브하고

- 아기가 먹고 트림을 시켜보고, 성공했다고 뿌듯해하고

- 아기가 울면 왜 우는지 이유를 다양하게 배우고, 적중했을 때 오호라! 기뻐하고........


하루 안에도 이렇게 배우고 축하하느라 바쁜 하루를 살고 있어요. 신대륙의 하루는 예상보다 훨씬 바쁘고 예상보다 더 행복하네요.


08월 23일 수요일 인증글  


빛나는 경험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이제는 안 믿는다. 경험이란 것은 이미 비루함과 지루함, 비범함과 지극함을 골고루 함유하기 때문이다.

_ 김소연, <나를 뺀 세상의 전부>, 252p


지금 이 순간 체험하고 있다. 빛나는 수유 대성공의 하루를 마치며.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일은 정말이지 빛나는 경험이다. 그 안에 초점 없는 피곤한 눈과, 가속노화와, 어깨 통증이 함유된 것을 실감하며 이 문장을 읽었다.


08월 24일 목요일 인증글  


마음의 정면으로는 당신이 항상 짜지만, 당신 때문에 마음의 옆구리는 한없이 시지만, 전체를 부감할 때 당신은 달다.

_ 김소연, <마음사전>, 36면


이 문장을 읽고 아빠가 생각났다. 단 한 번도 다정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아빠. 정면으로는 항상 짜다. 가끔 멀리서 아빠의 인생을 바라보면 한없이 시다. 그러나 아빠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전체적으로 느낄 때도 있는데, 아빠는 달다.



08월 25일 금요일


쓰는 일은 과정이 곧 결과입니다.

_ 박연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날부터 육아일기를 쓰고 있어요. 나중에 커서 이 일기를 본다고 생각하니 주저하게 되는 단어와 문장이 있더군요. 더 기막힌 표현을 쓰고 싶은데, 더 생생하게 너를 기록하고 싶은데... 제가 가진 능력이 한심할 지경이에요. 그래도 쓰는 것 자체가 선물이 되길 바라면서 수십 자루의 팬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써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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