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의 믿음
4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서른아홉에 계획한 임신이었는데, 마흔셋에나 아기를 안아볼 수 있었다. 10번째* 시험관 시술 끝이었다.
서른 아홉 여름, 태어나 처음으로 임신을 소망했다. 내 아기의 아빠가 되었으면 하는 남자를 그때 만났으니까. 내게 인생은 나를 증명해야 할 곳, 거대한 숙제 더미 같은 것인데, 이런 세상을 자녀에게 물려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는 가끔 실없이 보이지만, 삶은 누려야 할 무언가,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여겼다. 그와 함께라면 아기를 낳을 자신이 생겼다. 40년간 찾은 내 아이의 아빠를 만난 것이다.
그런 그가 난임이었다. 시험관 시술로만 임신이 가능했다. 그렇게 시작했다. 출발선은 늘 그렇듯 떨리긴 해도 희망이 찰랑거렸다. 난임병원과 주사는 무서워도 곧 임신부가 되어 뱃속에 행복이 뽀글거릴 날을 상상했다.
그러면 그렇지. 인생 그렇게 쉬운 거 아니다고 가르쳐 주는 것처럼 1, 2차 시술이 실패로 끝났다. 3차에는 임신이 되었는데, 유산으로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을 했다. 그렇게 10차까지 달렸다. 그동안 채취한 난자가 68개였다.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
1) 3차에 만난 아기는 12주까지 내 뱃속에 있었다. 그동안 사랑을 키워온 그 아이가 염색체 이상이라고 확진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나보다 더 슬픈 얼굴로 아기가 벌써 많이 커서 낳는 방법으로 이별해야 한다고 했다. 내 산도를 통과해 몸 밖으로 나가는 아기의 죽음을 느끼고 인생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이후 오랫동안 호흡과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시기를 겪었다.
2) 5차였다. 꾸역꾸역 주사를 맞으면서 쉬지 않고 병원에 다녔다. 난자채취를 위해 수술대에 올라 마취 직전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더니, 벌써 배란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손가락 끝까지 화가 느껴졌다. 링거 선을 잡아 던지고 울부짖으며 병원을 나왔다. 그동안 쌓인 불안과 두려움이 이 조기배란 사건으로 터졌다. 나는 더 깊은 우울의 세계로 진입했다. 매일 이유 없이 화가 치밀었고, 내 인생은 저주받은 것이 아닐까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동안의 내 경험에 의하면, 스트레스는 난임치료를 받는 2년에서 3년 사이에 최고치에 달한다. 내가 치료했던 로나의 경우처럼, 난임으로 많은 여성들이 죽을병에 걸린 것과 같은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고통스러워한다.
난임 심리 전문가 앨리스 D. 도마 박사님의 책 <기다림이 평화로울 때>**를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가 5차를 마칠 때가 2년이 되던 시기였다.
난임 기간 동안 다행히 몸은 힘들지 않았지만, 마음은 매일 무너져 내렸다. 원래도 불안한 사람이라 작은 것까지 통제하고 사는데, 통제라고는 전혀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고문처럼 느껴졌다. (다음 차수를 시작할 수 있는) 생리시작일도, 이번 달에 채취할 난자의 개수도, 몇 개의 난자가 채취될지, 조기배란 되지 않을지, 이식할 수 있는 배아가 나올지, 이식한다고 착붙***할 수 있을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내 감정도 점점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조용한 일식집에서 아빠와 점심을 먹다가 별 것도 아닌 일로 소리를 지르고는 나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인정했다. 그때부터 온 힘을 다해 살 길을 찾았다. 새 생명을 기다리다가 내 생명이 소멸해 가는 중이었으니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 난임 동료를 찾은 것이었다. 주변에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부모님, 친한 친구들 모두 마찬가지였고, 남편도 온전히 기대기는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고립되고 영혼이 삐쩍 말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시들어가던 어느 날 시험관 카페에서 오픈채팅방이 있다는 게시물을 보고 찾아갔다.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을 만나고 우울감이 많이 해소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고립감이었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이 세계는 인생이 자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는구나. 내가 별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구나, 이게 정상이구나 하며 깊은 위로를 받았다. 진작 찾아올걸. 내 삶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고립되기 전에는 몰랐다.
내가 건강한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지난 4년 동안 이 질문만 하고 살았다. 믿음보다는 의심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칙칙하다 못해 암전 된 시간. 아기의 100일을 앞두고 이 시절을 돌아보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참담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변화시킨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그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로또 맞은 것인지 체감하게 되었고, 죽음은 생명이 태어날 때 함께 태어난다는 그렇게 간단하지만 잊고 사는 것도 매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고립이 얼마나 위험한지, 삶을 나누는 동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행동한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인다. 나에게 슬픔이 부족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타인의 슬픔. 이제는 그 슬픔의 그림자가 보여 말을 오래 고르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위기의 시기에는 의심보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봄에의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초초해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날이 온다는 것을 그냥 알고 있다가 가슴 깊이 믿게 되었다.
글로 내 경험을 남기는 것에 대해 망설였다. 주변에는 채취만 30번 넘게 하신 분도 계시고 내가 뭐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것도 아니니까.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난임생활을 시작할 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 나눠주었다면 어땠을까? 이 글을 읽고 단 한 명이 단 1초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쓸모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부디 두줄****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의 마음에 평화가 쌓이길 빌면서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험관 차수는 채취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난임치료를 받는 모든 분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합니다. 역시 전문가의 말은 다릅니다.
***자궁에 배아가 착 달라붙는다는 말로 난임 커뮤니티에서 널리 쓰이는 말입니다.
****임신테스트기의 양성반응을 나타내는 두줄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