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난임일까

시험관 무서운 거 아냐. 고마운 거야.

by 카후나

6개월 동안이었다. 자임*을 시도한 건. 그때 남편은 북경에 살아서 ‘때가 되면’, 내가 북경으로, 그가 서울로 날아서 만났다. 순진하게 임신은 마음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다. 마음의 문제지 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20년 가까이 이 악물고 피임만 했으니까.


그렇게 북경으로 자임 시도 여행(?)을 시작한 것이 그해 초여름이었는데, 어느새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가, 우리가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 가까운 병원에 난임검사를 예약했다. 건강검진처럼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받자는 의미가 있잖아? 그럼 안심할 수 있을 거야. 스스로 말하며 주눅 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난임병원은 평일 오전인데도 붐볐다. 초음파로는 자궁과 난소의 상태를 파악했다. 이어 피검사를 했는데, 난소와 뇌에서 적절하게 호르몬이 조절되는지를 확인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어린애처럼 땅콩 입이 되어 울음을 터트리게 만든 나팔관 조영술**. 평소 생리통이 없던 내게 이 통증은 배 안쪽을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이었다. (아무 느낌이 없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겁먹지 마세요!)


결과를 확인하러 그다음 주에 방문했다.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휴, 다행이다. 다만 나이가 많다고 했다. 병원 밖에서 나는 젊은데, 병원에서는 항상 나이가 많다고 했다. 나이 때문에 기죽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다음은 남편. 검사는 간단했다. 놀랄 정도였다. 통증은커녕 쾌락이 있었다. (정말 불공평한 유성생식의 세계입니다!) 혼자 티브이가 있는 작은방에 들어가서 정자를 채취해서 제출하면 된다. 나는 아파서 울기까지 했는데 밝은 얼굴로 나오는 남편을 보니 억울한 마음이 들어 등짝을 한 대 때렸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아서 그랬다.


남편이 북경으로 돌아가고 혼자 결과를 들으러 갔다. 내 검사 결과는 기다리면서 꽤 떨렸는데, 남편의 결과는 당연히 좋겠지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만 오랫동안 보시더니 말을 고르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적어도 너무 적은 숫자의 정자만 찾을 수 있었다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극희소정자증인 것 같다고 했다. 당장 시험관을 권하신다고. 시험관이라니 그걸 어떻게 하지? 무서운 거 아닌가? 주변에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건강한 아기가 태어날 수 있는 걸까? (네, 제가 이렇게 무식했습니다.)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약어가 잔뜩 적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잠깐 계단에 주저앉았다. 내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한 남자다. 40년을 헤매고 이제야 찾은 사람인데… 이게 무슨 일이지... 다리가 풀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결과를 어떻게 전하지.. 고민하다가, 내 몸에 대한 결과가 아니니 최대한 병원에서 전달받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자고 생각했다. 결과지를 스캔해서 보내주고, 의사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남편은 43살에 처음으로 알게 된 자기 몸에 대한 사실에 놀란 것 같았는데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죽는 것도 아니고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지금 생각하니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였던 것 같다.


한 번 더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바로 다른 병원에 예약을 했다. 더 믿을만한 큰 병원이었는데, 이때는 아예 정자를 찾을 수 없었다. 당황해서 빨개진 남편의 목과 흔들리던 눈동자가 떠오른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이런 증상이 생긴 것인지 이유가 궁금했다. 조직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유명 대학병원 비뇨기과에서 조직검사를 받았다. 남편은 피만 봐도 기절하는 사람이라 내가 손을 잡아주며 조직검사를 하는 것을 지켜봤다. 남편은 지금도 이때 겪은 통증이 인생 최악의 통증이라고 한다. 이번 검사 결과도 나 혼자 들으러 갔다. 한 시간 넘게 대기하고 만난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서, 난임병원에서 시험관을 하면 임신할 수 있다고.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했다. (나중에 비로소 난임병원에 가서 우리 둘의 염색체 검사를 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남편의 균형전좌***가 이유였습니다.)


다행히도 1차부터 10차까지 몇 번을 제외하고는 수정란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수만큼의 정자를 채취할 수 있었다. 매번 차수마다 이번에는 남편 채취가 잘 되었을까 조마조마했다. 채취가 되지 않을 때는 보험으로 냉동해 놓은 세포를 해동해서 시도했다. (신선 정자가 결과는 훨씬 좋았습니다.)


난임검사를 받은 것이 19년 11월이었고, 시험관 1차를 시작한 것이 20년 10월이었다. 거의 1년 동안 난 뭘 한 걸까? 그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난 부정하고 있었다. 내가 난임이다. 난임커플이다 그걸 인정하고 주사를 받아오는 데까지 1년 가까이 걸린 것이다.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시험관은 무서운 거 아닌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무지에서 오는 다양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시험관은 단지 만나기 어려운 상황인 두 생식세포를 만나게만 해주는 것이다. 소개팅처럼! 나머지는 모두 그 둘이 알아서 해나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임신과 똑같이!


검사부터 1차까지 그 1년 동안 난임에 대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읽을 수 있는 것은 다 읽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난임 원인이 존재했다. 시험관을 한 번 시도도 하지 못하고 다른 길을 알아보는 커플도 많았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충분이 고차수까지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1-2번밖에 할 수 없는 커플들의 이야기도 읽었다. 안타까웠다.


난임에 대해 차분하게 공부하면서, 시험관이 무서운 거에서 고마운 것으로 변했다. 그림자로 봤을 때는 괴물이었는데, 날이 밝고 제대로 보니 귀여운 인형인 것처럼 시험관은 내 머릿속에서만 무서운 것이었다. 시험관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게 어디냐, 하는 감사한 마음으로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곧 엄마가 될 수 있겠지, 낙관적으로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1. 시험관 1차 더 빨리 시도해! 한 달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나아.


2. 시험관이라는 것에 쫄지 마. 무서운 게 아냐. 고마운 거야.


3. AMH(Anti-mullerian hormone의 약자, 난소나이를 알려주는 지표)는 숫자일 뿐이야. 집착하지 마. 수치와 채취 개수는 비례하지 않아.


4. 새벽까지 카페에 정보를 찾아 헤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자는 거야. 없어도 되는 스트레스를 굳이 만들지 말고 자는 게 어때? 결국 호르몬이 모든 것을 자동으로 해줄 거야.


*자임: 자연임신의 줄임말입니다.

**나팔관 조영술: 양쪽 나팔관이 막히지 않았는지 알아보는 검사입니다. 자궁 내에 조영제를 주입한 후 X-선 촬영을 하여 알아봅니다.

***균형전좌: 23쌍으로 이루어진 인간 염색채 중 제 쌍을 떠나 다른 쌍에 염색체 일부가 위치한 것으로 염색체 총양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생식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유산의 위험이 높은 특징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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