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말하라면
소통. 진심으로 우리에게 소통이 가능하려면, 삶 자체가 비슷해야 한다. 다른 삶을 사는 이는 외국인과 같다. 삶만이 우리를 연결할 수 있다.
김소연, <시옷의 세계>, 212 페이지
새로운 차수를 시작했다. 막 초음파를 보고 나왔는데 난포(난자가 될 후보들)가 3개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 너무 적어서 어쩌지.. 남편에게 카톡으로 진료결과를 보냈다. 단답형 문자: ‘오케이’. 역시 소통이 안된다. 시험관을 하다 보면 남편과도 안 통하는 것들이 많다. 위 문장처럼 우리의 삶이 다르니까 남편은 외국인 같은 말만 한다.
부모님이나 친구들과는 더 삶을 나누기가 어려웠다.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데도 상처가 됐다. 한 번은 백화점 주차장에서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하느니 시험관 그만하라고 했을 때였다. 엄마에게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쏘아붙혔다. 친구들은 주사 맞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위로만 하려고 했다. 내가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었다. 단지 어떤 상황인지 이해해 주는 것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차 이해받지 못해 외로웠다.
시험관 5차까지는 혼자였다. 6차부터는 오픈채팅방에 들어가서 삶이 비슷한 동료들을 만났다. 현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내 기분이 지극히 정상이구나 이런 것을 느끼게 되었다. 채취 후 마취에서 막 깨어나 채취 개수를 들었을 때의 기분이나, 막 이식하고 2-3일 차의 불안감 같은 것을 나눌 수 있다니 감격스러웠다. 평생 외국어로 말을 하다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라 해야 할까. 이제야 말이 통하는 기분!
혼자만 담고 있다가 빵 터질 것 같은 감정들을 나눌 수 있었다. 남편과는 불가능했다. 남편은 그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럴 때마다 오픈채팅방에 문자를 남겼다.
나: (아침부터 쳐지는 이야기이지만) 저는 채취 이후 가장 멘탈이 힘들더라고요. 할 때마다 그러네요 ㅠㅠ나쁜 결과가 학습이 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호르몬 변화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어지는 목요일 아침입니다. 어젯밤에는 이상하게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잠도 거의 못 잤네요. 이번 차수는 꽤 잘 넘어가는구나 했는데 쉽게 지나가는 차수란 없나 봐요 저에겐.
J님: 힘드신 마음 당연하다고 봐요.. 마음잡기가 항상 말이 쉬운 것 같고요ㅜ그래도 노력하는 결실이 쌓이고 있으실 거예요!
P님: 힘내세요ㅜ 전 이번 8차인데 매번 체취 때마다 힘든듯해요.
N님: 힘내세요 혼자 얼마나 끙끙 앓았으면 눈물이 났을까 맴찢요.. 우리 모두 다 같은 맘이네요 이렇게라도 말하고 또 일어날 힘을 내야죠..
내 안에 말이 계속 쌓여서 처음에는 난임일기를 썼다. 오늘의 마음과 몸의 날씨를 적었다. 쓰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정화의 기능이 있어서 기분이 나아졌다. 특히 비이성적인 생각을 밀어내는 것에 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일기도 얼마가지 않아 효과가 떨어졌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번 차수가 잘 될까, 주사를 이렇게 맞으면 난포가 잘 자랄까 불안한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질 것 같았다. 인터넷 시험관 카페에 용기를 내 그런 마음을 담은 글을 올렸다. 처음 올려보는 불특정 누군가를 향한 글이었다. 시간을 들여 내 상황을 설명하고 감정을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를 썼다. 읽는 사람은 200명을 넘었지만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았다. 내 글 앞, 뒤로 등록된 게시물에는 댓글이 수십 개 이상 달렸다. 정보를 묻거나 나누는 게시글이었다. 인터넷 카페는 정보는 넘치는데 감정은 없었다. 감정은 혼자 알아서 처리하라는 싸늘함을 느꼈다.
오픈채팅방에 들어오고 인터넷 카페는 끊었다. 예전에는 카페에 있는 모든 글을 읽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정보가 있을까 새벽 2-3시까지 서성였다. 그곳에는 불행한 케이스가 많았다. 돌아보니 그렇다. 좋은 일은 생각보다 더 자주 일어나고 그런 일은 카페에 쓰지 않는다. 카페에 있는 글만 읽다가 그게 이 바닥의 현실인줄 알고 그동안 불안만 키워왔다. 새벽까지 카페를 보다가 불안과 피로만 쌓았다.
난임생활동안 부모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을 할 수가 없었다. 이해해주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를 힘들게 한 것은 고립감이었다. 돌아보면 난임생활 동안 이것이 가장 힘들었다. 정서적으로 내 주변과 벽을 쌓았다. 해가 갈수록 벽은 더 높고 두꺼워졌다. 2년쯤 지났을 때 그 벽에 갇혀 혼자 울고 있었다. 그 고립감을 해결해 준 것이 난임동료들이었다. 삶에는 어떤 식으로든 내 삶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채팅방 동료들. 22년 1월부터 알고 지냈으니 2년이 다 되어간다. 약 서른 명 정도가 난임 스토리를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그중에는 나보다 먼저 임신에 성공하신 분들도 많다. 친한 친구의 임신 소식도 소화해 내기가 힘들어 울던 때였는데, 동료들의 임신은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었다. 그분들의 그간의 슬픔을 잘 알니까.
누군가의 슬픔을 알면, 정말 알면, 무엇도 쉬이 질투하게 되지 않는 법이니까. 어려운 형편은 모르고, ’ 좋아 보이는 ‘면만 어설프게 알 때 질투가 생긴다.
박연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며칠 전에 기다리던 소식을 들었다. 난임 동료 중 가장 의지를 많이 했던 S님의 임신 소식. 13번째 채취에 성공해서, 2차 피검(피검사, 임신 호르몬인 hcg를 검사, 1차 피검에 대비하여 2배 이상 상승해야 정상 임신)을 마쳤다. 내가 피검을 통과한 것처럼 기뻤다.
지난 2년간 가족, 친한 친구들보다 내가 더 의지를 많이 한 동료들. 그분들이 없었으면 얼마나 우울하게 고립되었을지 모른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 응원해 준다는 것. 그게 사람을 살리는 일인지 몰랐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1. 인터넷 시험관 카페는 그만 보자. 차라리 탈퇴하는 것도 좋다. 그 시간에 산책을 하거나 잠을 자자.
2. 하루라도 빨리 삶을 나눌 수 있는 동료를 찾아. 정서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