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기다리다가 남편을 잃으면 뭐 해
아이를 갖기도 전에 이렇게 감정적으로 멀어져 버렸는데,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결혼생활에 회의가 이는 게 당연할 정도이다.
<기다림이 평화로울 때> 앨리스 D.램키
이 문장을 그대로를 느끼고 있었다. 아기를 기다리다가 결혼생활에 위기가 왔다.
시험관 3차에 유산을 하고, 4차가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5차에 조기배란이 돼버렸다. 원, 투, 쓰리 펀치를 맞았다. 이때가 난임생활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 드는 생각이 ’나 우울해 ‘ 였다. 남편은 그 우울한 표정을 매일 보고 있었다. 남편은 나름대로 아내를 우울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럴 때마다 더 극성으로 싸우기만 했다.
남편이 우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 한강을 걷다가 이렇게 사느니 죽고 싶다고 내가 말했을 때. 그 산책은 5차를 끝내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식히려고 나간 것이었다. 열흘 넘게 주사를 맞으며 난자들을 귀하게 키워왔는데, 채취 당일 수술대에 누워 마취를 기다리다가 알게 되었다. 벌써 배란되어 버렸다고.... 물론 진짜 죽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힘들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곧이곧대로 듣고 산책로 중간에서 내 어깨를 잡고 울었다.
남편의 눈물을 보고 처음으로 남편의 슬픔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주사도 나만 맞고, 병원도 나만 가고, 유산으로 몸과 마음이 황폐한 것도 나였다. 남편이 힘들 거라고는 생각을 못한 것이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다.
1. 남편은 무력감을 느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나 대신 주사를 맞을 수도 없고 배아를 이식할 수도 없다. 남편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무력감을 느꼈다. 게다가, 남편이 뭘 해도 내가 우는 얼굴이라서 더 그랬다. 꽃을 사 와도 이런 걸 왜 사 왔냐고 했고, 발 마사지를 해줘도 왜 더 잘하지 못하냐고 불평이었다. (지금 적고 보니 제가 잘못했는데, 당시에는 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고민하고 노력할수록 갈등이 더 심해지니, 나중에는 남편이 나를 피하는 상황이 왔다.
2. 죄책감도 있었다. 남편의 난임 원인으로 내 인생까지 힘들어지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 7차까지만 해보고 잘 안되면 나를 떠나는 것까지 생각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임신이고, 자녀고 무슨 소용일까. 남편을 잃으면.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남편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을 이 이야기를 듣고 몇 시간 울어 벌게진 내 얼굴을 보고 깨달았다.
3. 시기의 문제도 있었다. 시험관을 시도하면 곧 임신이 되는 줄 알았는데, 5차까지 온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10번을 더 한다고 임신이 가능할까… 믿음에서 의심으로 기울기가 돌아가는 타이밍이었다. (나중에 난임 동료들과 이야기해 보니 6-7차에 특히 이런 의심이 강하게 들면서 우울해졌다고 하더군요.)
4. 남편은 본인이 힘든지도 몰랐던 것 같다. 5차에 조기배란돼버린 이 시점이 1월이었다. 뭐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사주를 보러 갔다. 거기서 들은 말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단 한 가지만 생각난다. 남편 앞뒤로 큰 산이 있어서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어떻게 본인의 마음을 그렇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거냐고. 사주 보러 간 나를 놀리다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결국 중요한 사람은 남편이구나. 나랑 남편이 잘 사는 게 훨씬 중요하구나.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아기가 아니라.
깨닫고 나서 2022년 한 해는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시험관이 무조건 우선순위였는데, 우리의 현재 생활을 최우선으로 교체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양양에 자주 갔고, 남편의 소원이었던 하와이에도 다녀왔다. 시험관 때문에 식단조절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었는데, 금요일 저녁에는 그의 소울푸드인 피자도 먹고 맥주도 마시며, 순수하게 현재의 남편이 짓는 웃음에 집중했다. 내 우울도 남편이 신난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밝아졌다. 나는 내 앞에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많은 난임 부부에게 난임은 결혼의 첫 번째 시험이고 위기이다. 내가 상담했던 대다수 부부들은, 난임이 해결된 뒤 돌아보면 난임을 경험함으로써 자신들이 더 가까워지고 연대감도 더 강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기다림이 평화로울 때> 앨리스 D. 램시
이 말대로 돌아보니 4년간 난임이라는 위기를 함께 겪어오면서 남편과 가까워졌다. 좌절과 환희의 순간에 곁에 있었던 것은 오직 남편뿐이었다. 첫 임신한 아기를 하늘로 보내고 내 눈물을 닦아준 사람도, 매번 생리할 때마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게 웃게 해 준 것도 남편이었다. 오늘도 싸웠는데, 글을 쓰다가 다시 다짐한다. 앞으로도 남편의 웃는 모습을 보며 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지.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1. 기분이 나쁘면 남편에게 기대지 말고, 먼저 혼자 해결하려고 노력하자. 운동을 하든, 책을 읽든, 친구를 만나든. 남편이 잘못한 것 같지만, 네가 그냥 기분이 안 좋은 것일 수 있어.
2. 남편은 생색을 내거나, 자신의 감정표현을 세세하게 하지 않잖아. 말하지 않는다고 상황이 없는 건 아니야. 더 마음을 써서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