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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광 Oct 18. 2024

옛날이야기 – 어쩌면 오늘 (3)

그렇게 생각할 때, 내가 스스로의 ‘통근’에 대하여 반추해 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할 수 있겠다.     

   

서울에서 경남대까지 이르는 길은 멀고도 지루한 여정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택시를 타면 서울역까지 반 시간이 걸린다. 이미 그때부터 온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지만, 사실 여행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따름인 것이다.      

   

새벽 마수걸이를 하는 택시 특유의 냄새가 있다. 디테일은 다르지만, 베이스를 이루는 것은 늘 약간은 어찔한 인공의 레몬 향이다. 그 냄새를 맡으면 멀미가 난다. 창문을 약간 열어 놓는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으면 출근길의 매연이 섞여 들어온다.     

   

서울역에서 마산역까지는 고속철로 세 시간이 걸린다. 정확히는 세 시간 하고도 사 분이다. 긴 시간이다. 이쯤에서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면 어김없이 동대구역이다. 딱 절반을 온 것이다.     

   

동대구역에서 고속철의 고속 구간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고속철은 더 이상 고속철이 아니다. 철마에 가깝달까. 무궁화호인 듯 새마을호인 듯 열차는 무거운 동체를 이끌고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여 간다. 세월인 듯 네월인 듯.     

   

영등포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동대구까지 세 시간 사십 분이 걸렸다. 정확히는 세 시간 사십 분에서 사 분이 모자란다. 이십 년 전의 이야기다. 참을성이 없어진 것일까. 그때보다 길은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마치 서울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처럼 지루하기 짝없는 여정이 다시 시작된다.      

   

마산역에 도착하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는데 시계는 겨우 아홉 시를 가리킨다. 열 시 반 수업에 출석······ 하기 위해 택시를 탄다. 약속이라도 한 듯 기사는 늘 초로의 남성이다. 행선지를 부르면 어김없이 학교 근처의 맛집을 이야기한다.     

   

“식사를 아직 못 하셨습니까?”     

“못 묵었지예. 출근하는 양반덜 모셔다 디리고 우리는 한 박자 늦게 묵어야 되지예.”     

   

택시는 70km/h 속도 제한 표지판 앞을 거의 두 배 가까운 속력으로 달려서 순식간에 교정으로 들어선다. 십오 분 정도가 소요된다.     

   

버스를 타면 같은 곳까지 한 시간이 더 걸린다. 버스는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거진 두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어릴 때는 버스 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풍경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써 보지만 덜컹거리는 차체가 그저 지겨울 뿐이다.      

   

두 시간. 일주일이면 열두 시간이며 한 달이면 마흔여덟 시간이다. 달마다 꼬박 이틀씩을 우중충한 봉고차 바닥에 내다 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삶 중 2년은 없는 셈 치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는 사라진 그 두 해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언제나 그러했듯, 아버지는 앞으로도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따위 짐을 누가 나한테 떠맡겼느냐고 분노하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것을 스스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이 오늘이 되어 고스란히 내가 짊어질 무게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버지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 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문학창작산실(수필) 선정작. 이 글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인 문장웹진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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