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아버지와 나이를 견주는 버릇이 생겼다.
정확히는 삶을 맞대어 본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84년생이고 아버지는 47년생이다. 이런 것은 표로 정리하면 깔끔하게 비교가 된다. 그러니까 아버지 나이 37세에 내가 태어난 셈이다. 내가 지금 서른여덟이니까 바로 작년의 일이다. 내 기준에서 보자면 이것은 예고 없던 재앙에 가깝다.
물론 84년도의 기준으로 서른여덟이란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의 그해가 제법 준비된 나이였는가 하면 전혀 그런 것도 아니었다. 1984년을 살아가던 37세의 아버지는 ― 내가 지난 몇 년간 동네방네 지껄이고 다녔듯 ― 멀쩡하게 잘 다니던 군대를 때려치우고 나와서는 개고생을 하는 마당이었다.
이것은 모두와 충분히 합의된 사안이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엄마의 처지에서는 사기 결혼을 당한 셈이다. 물론 스스로를 되돌아보자면, 이 점에 대해서는 나라고 해서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나 그런 식으로 부자의 삶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싫다. 싫지만, 당연히도 이것은 좋고 싫고의 문제는 아니다. 짜증 나는 일이다.
나는 아버지의 군 시절 기록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16절지를 가로로 뉘어서 표지의 정중앙에 〈하사관자력표〉라는 제목을 큼지막하게 박아 넣고 굵은 실선으로 테두리까지 친 완전 구식 문서다. 군 본부가 관리하던 정부의 공식 자료이다.
제목의 아래쪽으로 “부본”과 “대한민국 육군”이라는 글자가 사각 꼴의 글씨체로 존재감 있게 인쇄되어 있다. 도장을 힘 있게 눌러서 한 글자씩 박아 넣었다는 느낌이 드는 위압감 있는 글씨체다. 언뜻 보아도 “아무렇게나 반출할 수 없음”이라는 기운을 물씬 풍기는 문서인 것이다.
표지의 왼쪽 위에는 낡은 흑백임에도 못생겼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아버지의 증명사진이 복사되어 있다. 아마도 아버지가 병무청이든 어딘가에서든 어렵사리 사본을 발급받아 왔을 것이다. 뭔가 골치 아픈 사안에 활용할 용도였으리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개인적으로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 그런 번거로운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는 이 문서를 굳이 숨겨 놓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런 것’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았다면 일부러라도 내게 말해서 보도록 해주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아버지는 이런 따위의 문서 따위에 관심을 가진다는 따위의 머릿속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십 년을 지켜본 아들내미의 사십 년 가까운 행동인데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어딘가로 제출되기 직전에 우연히도 내 눈에 띄지 않았다면, 이 문서는 그 존재조차 잊힌 채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 어딘가에, 당최 있기는 한 것인지 어떤지조차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문서들이 조용하게 처박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의 방향을 결정해 버린 한 가지 주요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 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문학창작산실(수필) 선정작. 이 글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인 문장웹진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