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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광 Oct 18. 2024

습한 이론과 젖어버린 현실 (3)

막노동 현장에서는 이런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롭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론은 여전히 현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때 서울은 청계천을 복개하느라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고 나는 그 난장판을 더 엉망으로 만들 것인지 혹은 수습하게 될 것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정신없이 휩쓸려 들어갔다. 머리띠 두른 학생들은 철거 인력을 우선순위의 공적으로 규탄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철거는 돈 되는 일이었다. 살아가자면 일당 육만 원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일단은 내가 살고 봐야 했다. 당시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와 같았다. 이들 중에는 자본주의 치하의 철거가 갖는 정치적 함의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먹고 살기 빠듯하다는 점에 있어서만은 이들 모두가 완전히 일치했다.     

   

청량리에서 혼자 살며 아들 둘을 키우는 김 씨 아저씨는 인력소에서 정규직 대우를 해주는 ─ 그래봐야 4대 보험 따위는 없다 ─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원양어선을 탔다는 땅딸보 형은 갑판장 눈 밖에 나는 바람에 태평양인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물귀신이 될 뻔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위인이었는데, 입을 벌릴 때마다 여기저기 때워 넣은 이빨이 정신 사납게 번쩍거렸다. 이십 대와 삼십 대와 사십 대. 다소 묘한 구성의 우리는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이 화기애애하게 서로의 신세를 자조했다.     

   

전·의경과 시 공무원들이 깃발 든 학생 무리를 막아서는 가운데 철거는 예정대로 차근차근 이루어졌다. 나를 포함한 철거 잡역부들의 귀에는 하루 종일 깃발 부대의 욕설과 야유가 날아왔다. 정작 우리는 그런 일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날 작업을 ‘야리끼리’로 맡은 덕택에 마음이 두 배는 바빴던 것이다. 우리는 이론가들의 야유를 배경음 삼아 죽어라고 몸을 놀렸다.     

   

그날 우리는 싸움을 했다. 김 씨 아저씨가 땅딸보 형을 때렸다. 땅딸보 형은 반격한답시고 내 턱에 주먹을 날렸다. 열 평이 될까 말까 한 술집은 뒤엎어진 김칫국물로 엉망이 되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김 씨 아저씨의 주먹은 엉뚱한 데 꽂힌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저씨는 주먹질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내일 웃으며 털어버릴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가난을 때려 부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유난히도 달이 붉은 밤이었다.     

   

그날 어떻게 골방으로 돌아갔는지, 눅눅한 방구석에서 어떻게 잠을 청했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은 이대 거리의 팔랑이는 치맛자락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다. 나의 오늘과 그들의 오늘이 몹시도 달라, 나는 그만 아득히 정신을 놓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내게서는 물에 빠진 요크셔 냄새 같은 것이 풍겼을까. 나는 그 치마의 주인들이 나를 보지 않았기를 바란다. 보았더라도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게서 받는 감정과는 다른 것을 느꼈기를 바란다. 제발 그랬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나는 지금으로서도 너무나 슬퍼 견딜 수가 없다.



※ 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문학창작산실(수필) 선정작. 이 글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인 문장웹진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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